캄보디아 '훈'할머니의 증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前일본군 장교 다다쿠마 쓰토무(只熊 力.76)씨는 17일 훈할머니의 고향이 仁川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아시아태평양국회의원연합(APPU) 일본의원단 사무국장 겸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다다쿠마씨는 이날 밤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하나코(花子.훈 할머니의 일본 이름)로부터 여러차례에 걸쳐 고향이 인천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다다쿠마씨가 밝힌 훈할머니와의 관계 등 당시 상황이다.
▲훈 할머니와 만나게 된 것은?
-1945넌2월말 소속부대(일본군 제2사단)가 버마로부터 캄보디아로 이동하게 됐다. 캄보디아가 프랑스군으로부터 해방됐던 그해 3월10일부터 프놈펜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당시 나의 업무는 시아누크국왕 경비대를 훈련시키는 책임자였으며 캄보디아인들로 구성된 의용군을 가르치는 교육대장도 겸임하고 있었다. 하나코(훈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그 무렵인 5월 위안소에서였다.
▲훈 할머니를 만났던 그 위안소는 어떤 곳이었나?
-위안소는 프놈펜 교외의 도로변에 있었으며 인근에 군비행장이 있었다. 위안소에는 조선여성 4∼5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일본 여성은 없었으며 30대 조선인 남성이 위안소를 전부 관리했다(그는 이 사람을 '사장'이라고 불렀다). 영화관처럼 출입구에서 조선인 사장이 직접 돈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는 그런 형태였다. 당시 훈 할머니의 나이는 18∼19세, 다른 여성들은 25∼30세로 훈 할머니가 가장 어렸다. 훈 할머니와는 그후 2주일에 한 번 정도 위안소에서 만났다. 위안소에는 특별한 간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교, 사병용 구분은 없었으며 돈만 지불하면 들어 갈 수 있었으나 사병 월급으로는 자주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군대와의 관계는?
-위안소이기 때문에 (일본)군대와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헌병들이 위안소를 수시로 순시하곤 했다.
▲프놈펜에 다른 위안소는?
-조선여성들이 있는 그곳 밖에 없었다. (그는 이부분에 대해 `나를 믿어달라'고 덧붙였다) 캄보디아의 각 지방에는 위안소들이 있었으나 프놈펜에는 사령부 요원등 4백∼5백명의 병력밖에 없었다. 병력이 얼마 안돼 위안소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일본여성들이 있던 위안소도 프놈펜에는 없었다.다만 술집은 1∼2곳 있었다.
▲패전후 훈 할머니와의 관계는?
-패전후 소속부대는 캄보디아를 떠났으나 시아누크 국왕측의 부탁으로 잔류,프랑스에 대항하는 캄보디아 독립군 결성을 지원했다. 45년12월 당시 캄보디아 총리가 프랑스군에 체포됐다. 같은 달 프랑스군에 쫓겨 정글로 피하면서 훈 할머니를 함께 데리고 갔다. 당시 훈 할머니는 해방후 한때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프놈펜을 일행들과 함께 떠났으나 어찌된 일인지 프놈펜에 다시 돌아와 있었다. 정글로 피했으나 나는 프랑스군에 쫓겨 다니는 신세였기 때문에 같이 행동할 처지가 못됐다. 그래서 훈 할머니를 안전한 한 민가에 맡기고 내가 왔다 갔다하면서 만나곤 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46년 4월 프랑스군과의 전투가 격화되면서 훈 할머니를 사찰승려에게 맡기고 태국 국경으로 갔다. 그후 제네바 협정으로 캄보디아가 독립됐던 54년까지 9년동안 훈 할머니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9년만에 프놈펜에 다시 돌아 와 사람을 통해 훈 할머니를 찾았으나 그때는이미 캄보디아인과 결혼해 가정을 갖고 있었다. 그뒤 다시 캄보디아에 올 작정을 하고 55년8월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귀국후 反시아누크 인물로 몰려 7년동안 캄보디아 입국비자를 받을 수가 없었다. 캄보디아를 다시 찾은 것은 62년 목재개발을 담당하는 합작회사의 총지배인으로 프놈펜에 부임하면서 였다.
▲훈 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은?
-67년 내가 사람을 통해 훈 할머니를 찾았다. 훈 할머니가 지방에서 프놈펜의 내 사무실로 와 15분정도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다다쿠마씨는 훈 할머니가 말한 동거생활에 대해 "45년12월 정글로 함께 들어간후 3∼4개월 동안 함께 지내는 시간이 있었으나" 자신은 정글을 여기저기 이동해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고 훈 할머니는 안전을 고려, 민가에서 지냈었다고 말했다.
그는 훈 할머니를 민가에 맡긴 지역이 "프놈펜에서 북쪽으로 1백50∼2백㎞ 떨어진 캄퐁참州의 마을"이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다다쿠마씨는 또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훈 할머니의 말에 대해서도 "확인한 바가 없다. 잘 모르겠다"고 부인했다.
다다쿠마씨는 또 훈 할머니로부터 고향이 인천이라는 말을 여러차례 들었다면서도 당시 자신은 훈 할머니의 고향(인천)이 "서울 북쪽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고향이 인천이라는 말을 들은 것 외에는 훈 할머니의 본명, 가족상황 등 과거를 되살릴만한 것은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훈 할머니가 자신과 불과 3살차인 73세로 알려진 데 대해 "당시 훈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보다 7∼8세 아래인 18∼19세 정도였다"면서 다소 의아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