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행정부 인사독주 폐해심각…정치적 편의로 선출

  • 입력 1997년 3월 26일 20시 34분


[워싱턴〓이재호 특파원] 한보사태로 현직장관이 구속됐고 임명된지 얼마 안되는 각료 몇명은 경질됐다. 「장관 목숨이 파리목숨」이란 자탄이 나올 만 하다. 미국정치에서도 각료의 자리가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다고 유에스에이 투데이지가 25일 보도했다. 과거에는 각료직이 대통령수업을 받는 자리일 때도 있었으나 요즘은 그런 경우를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 60년대는 물론 70,80년대만 하더라도 거물급 장관들이 있었다. 비운에 쓰러진 로버트 케네디는 법무장관을 거쳐 1968년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다. 70년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美中(미중)관계 정상화를 통해 냉전 종식의 역사적인 길을 열었다. 80년대 후반 부시정권에서 국무장관을 지냈던 제임스 베이커는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중동평화회담의 골격을 만들어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별은 더욱 빛난다. 2차대전후 유럽부흥계획(마셜플랜)을 세웠던 조지 마셜 국무장관, 전후 미국의 대소(對蘇)정책과 냉전외교를 총괄했던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 등이 좋은 예다. 건국 초기 제퍼슨, 매디슨, 먼로, 애덤스, 부캐넌대통령 등이 모두 각료자리에서 대통령수업을 쌓았다. 각료의 위상은 그러나 90년대, 특히 클린턴 행정부에 이르러 현저히 추락한다. 이름이 오래 기억될 만한 전 현직 각료가 없다. 중량급 각료라면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과 그 전임자였던 로이드 벤슨 전 상원의원 정도다. 이름을 빛내기는커녕 전 농무장관 마이크 에스피를 비롯, 무려 10명이 넘는 각료가 부패스캔들로 사임하거나 조사를 받았다. 왜 이렇게 추락하는가. 투데이지는 그 원인으로 백악관의 독주와 인사의 비합리성을 들었다. 백악관의 개입 범위가 넓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내각의 권능과 위상이 떨어졌고 대통령이 개인적 정치적 편의에 따라 사람을 고르다 보니 특출한 인물들이 제대로 등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 투데이지는 『요즘 대통령들은 정책과 아이디어가 있고 대통령에게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소신있는 인물 대신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며 당당하게 대중 앞에 나서기 보다는 (대통령)뒤에 숨기만 하는 인물들만 골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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