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세사기 피해 3만6천 명… ‘삶이 멈춘 고통’ 외면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2일 23시 24분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에 경매 중지를 촉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에 경매 중지를 촉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정부가 공식 인정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지난해 말 기준 3만5909명으로 집계됐다. 1년 사이에 1만 명 넘게 늘어난 것으로, 매달 1000명 가까운 피해자가 추가된 셈이다. 전체 피해자 4명 중 3명은 20, 30대 청년이었다. 이처럼 미래 세대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피해 구제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전세사기로 문제가 된 주택을 경매로 매입해 10년간 주거를 보장하는데, 지난해 LH가 매입한 주택은 4800건에 불과했다. 연간 목표(7500건)의 64% 수준으로 전체 피해자 중 13%만 혜택을 받은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보증금 일부라도 돌려주기 위해 여야가 합의했던 최소 지원금 1000억 원은 재정 당국의 반대로 올해 예산에서 전액 삭감됐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예방 대책도 미흡했다. 정부의 대책은 집주인 정보를 확인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예방 캠페인을 벌이는 수준이어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신종 수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올해부터 전문가가 사전에 계약서를 검토해 주는 ‘안전 계약 컨설팅’을 시행할 방침인데, 전세사기 피해가 2022년 하반기부터 대규모로 나타난 걸 감안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가 대부분인 피해자들은 전세사기 이후 사실상 삶이 멈췄다고 호소한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잃을 위기에 처해 결혼과 출산도 미루고, 법원 경매와 피해자 모임을 오가며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는 이들이 상당수다.

국회는 2023년 5월 ‘전세사기 특별법’을 만들 때 피해 규모를 예상하기 어렵고 사기 수법이 계속 지능화하면서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며 “6개월마다 보완 입법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24년 8월 LH가 피해 주택을 매입하도록 한 것 외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정치권과 정부는 계속 늘어나는 피해자 수를 기계적으로 집계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이제라도 약속을 성실히 이행해 피해자의 눈물을 조금이라도 닦아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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