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첫 고속철도가 ‘시한폭탄’이 된 이유(feat. 일대일로)[딥다이브]

  • 동아일보

인도네시아 기술 진보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던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속철도 ‘후시(Whoosh)’. 하지만 개통 2년 만에 인도네시아의 최고 골칫거리로 전락했습니다. 고속철도 건설 과정에서 중국에 진 막대한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보이기 때문인데요.

중국이 판 부채 함정에 인도네시아가 걸려든 걸까요. 아니면 애초에 고속철도 건설 사업 자체가 무리였던 걸까요. 결론 내리긴 이르지만, 곳곳에서 삐걱대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최신 사례인 건 틀림없어 보입니다. 탈선 중인 인도네시아 후시 고속철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2023년 10월 개통한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후시(Whoosh)’. 뭔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쉭’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로 이름을 붙였다. 인도네시아 최대 도시 자카르타와 세 번째로 큰 도시 반둥을 잇는 143km 구간을 달린다. 신화통신 뉴시스
2023년 10월 개통한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후시(Whoosh)’. 뭔가가 빠르게 지나가는 ‘쉭’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로 이름을 붙였다. 인도네시아 최대 도시 자카르타와 세 번째로 큰 도시 반둥을 잇는 143km 구간을 달린다. 신화통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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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된 고속철도
최고속도 시속 350㎞. 3시간 30분 걸리던 자카르타-반둥 간 통근 시간이 약 40분으로 확 단축됐습니다. 2023년 10월 2일 공식 운행을 시작한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후시(Whoosh).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속철도 개통은 인도네시아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개통식에서 당시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죠. “이 고속철도는 우리 대중교통 현대화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지난 8월. 인도네시아 철도공사 사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답변해서 충격을 안깁니다. “이것(후시)은 시한폭탄과도 같습니다.” 고속철도 사업에 참여한 국영기업들이 줄줄이 재정 위험에 처했다는 폭탄선언이었는데요. 고작 개통 1년 10개월 만에 대실패로 낙인찍힌 초대형 인프라 사업. 후시엔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한마디로 장사가 너무 안 됩니다. 승객이 없어 텅텅 빈 채로 운행하다 보니 돈을 못 버는 거죠. 원래 모든 고속열차 사업이 별로 수익성은 없는 법이라고요? 네, 그건 인도네시아 정부도 애초에 알고 있던 바였고, 그래서 투자 원금 회수에 40년쯤 걸릴 거라고 각오하고 시작했는데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할림역에서 가족들이 후시 열차 모형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열차는 중궈중처(CRRC)가 제작한 것으로, 중국 자체 기술로 제작한 고속열차가 해외로 정식 판매된 건 인도네시아가 처음이었다. 동남아시아 첫 고속철도인 후시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자부심으로 통했다. 신화통신 뉴시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할림역에서 가족들이 후시 열차 모형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열차는 중궈중처(CRRC)가 제작한 것으로, 중국 자체 기술로 제작한 고속열차가 해외로 정식 판매된 건 인도네시아가 처음이었다. 동남아시아 첫 고속철도인 후시는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자부심으로 통했다. 신화통신 뉴시스


문제는 승객수(하루 평균 1만6400명)가 당초 예측치(5만~7만7000명)의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는 거죠. 어느 정도냐면 매출을 다 합쳐도 고속철도 건설을 위해 빌린 돈의 이자조차 갚지 못합니다. 지난해 티켓 판매 수입이 1300억원(1조5000억 루피아)이었는데, 연간 이자 부담만 1700억원(2조 루피아)이니 말이죠. 원금은커녕 이자만 갚아도 적자투성이입니다.

도대체 그 막대한 이자를 누구한테 갚고 있을까요. 바로 건설비용(10.5조원)의 75%를 빌려준 중국개발은행입니다. 인도네시아 고속철도는 중국이 돈을 대부분 대고 중국 기업이 포함된 합작법인이 건설을 맡는 전형적인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었거든요.

이대로 가면 고속철도의 적자는 계속 누적될 거고, 사업에 참여한 인도네시아 국영기업 컨소시엄마저 파산을 피하기 어려울 상황. 결국 보다 못한 인도네시아 정부가 나섰습니다. 중국 측과 부채 구조조정 협상에 들어갔죠. 이자율 인하, 상환 유예, 위안화 대출로의 전환 등을 요청할 걸로 보이는데요. 이제 막대한 고속철도 부채는 국영기업을 넘어선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8월 고속열차 후시를 이용한 뒤 기념사진을 찍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가운데). 프라보워 공식 홈페이지
지난 8월 고속열차 후시를 이용한 뒤 기념사진을 찍는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가운데). 프라보워 공식 홈페이지


11월 4일 프라보워 수비안토 현 대통령은 고속철도 부채를 갚는 데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어요. 그렇게까지 심각한 일이 아니라며 국민을 진정시키려는 거죠. “매년 1조~2조 루피아를 (이자로) 내야 하지만 교통체증과 오염 감소, 더 빠른 이동이란 이점이 있습니다. 이 모든 건 계산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여론은 심상찮습니다. 일부 정치인은 “중국에 빚을 갚지 못하면 (함반토타 항구 경영권을 중국에 넘긴 스리랑카 사례처럼) 중국이 영토적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면서 국가 주권이 위협받는다고 열을 올리고요. 틱톡 등 SNS엔 ‘비싼 고속철도를 타지도 못하는 평범한 국민이 낸 세금으로 중국에 빚을 갚게 생겼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영상이 줄을 잇습니다.

역이 왜 여기 있나요?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는 구간이 너무 짧은 데다(143㎞), 티켓 가격도 비싸서(약 2만2000원) 흥행이 쉽지 않을 거란 우려가 처음부터 많았습니다. 애초에 ‘동남아 최초’라는 멋진 타이틀을 얻기 위해 사업이 무리하게 진행된 면이 없지 않은데요.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특히 문제 삼는 건 왜 하필 중국을 파트너로 선정했냐는 겁니다. 2015년 입찰 시점엔 더 일찍부터 준비해 온 일본이 유력해 보였거든요.

인도네시아 파달라랑역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를 향해 역무원이 인사를 하고 있다. 신화통신 뉴시스
인도네시아 파달라랑역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를 향해 역무원이 인사를 하고 있다. 신화통신 뉴시스


당시 일본은 총사업비 62억 달러를 제시했어요. 이를 일본이 연 0.1% 이자율로 장기 대출해 주되, 인도네시아 정부가 직접 예산으로 갚는 조건이었죠.

이와 달리 중국은 사업비를 55억 달러로 더 낮게 잡았고요.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닌 국영기업들이 출자한 합작법인(60% 인도네시아, 40% 중국)에 연 2% 이자율로 사업비의 75%를 대출해 주겠다고 했어요. ‘공사비가 더 싸다+정부 예산이 안 든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정부는 중국의 손을 잡았죠.

문제는 막상 완공 시점이 돼서 보니까 실제론 중국 제안이 더 싼 게 아니었단 점입니다. 크게 두 가지가 문제인데요.

①공사 지연으로 건설비용이 72억7000만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토지매입 등의 절차가 시간을 상당히 잡아먹었고요. 2020년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공사가 지연돼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특히 나중에 추가로 제공된 대출금엔 기존보다 더 높은 3.4%의 이자율이 적용됐죠.

아무리 천재지변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 비용과 이자율이면 부담이 여간 큰 게 아니죠. 후시 개통 직후, 인도네시아 경제금융개발원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고 파이살 바스리(2024년 사망)는 이런 날카로운 비판을 남겼습니다. “현재 환율로는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100년이 걸릴 겁니다. 저는 이걸 ‘세상이 끝날 때까지’라고 부를게요. 만약 좌석의 50%만 채워지고, 하루 30회 운행에 요금이 25만 루피아라면 투자금 회수에 최대 139년이 걸릴 겁니다. 계산하긴 쉬워요.”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후시가 정차하는 파달라랑역 모습. 반둥 시내 중심에 있는 반둥역까지 경전철로 18분 떨어져 있다. 신화통신 뉴시스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후시가 정차하는 파달라랑역 모습. 반둥 시내 중심에 있는 반둥역까지 경전철로 18분 떨어져 있다. 신화통신 뉴시스


②대도시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진 곳에 역이 들어섰습니다.

후시가 승객을 모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이 엉뚱한 곳에 있기 때문인데요. 자카르타와 반둥, 두 대도시의 정차역이 모두 외곽에 있습니다. 예컨대 후시가 정차하는 할림역에서 자카르타 시내 중심지(두쿠 아타스)로 가려면 경전철로 갈아타고 28분을 가야 하죠. 후시가 정차하는 파달라랑역에서 반둥 시내(반둥역)까지 이동하는 데도 18분 걸리고요.

‘고속철도로 자카르타-반둥 40분!’이라고 홍보하지만, 도심을 기준으로 하면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을 포함해 그 몇 배가 걸립니다. 요금은 일반 열차의 5배인데 말이죠. 손님이 없을 만도 하죠.

그럼, 왜 이렇게 불편하게 정차역을 정했을까요. 2015년 일본의 설계안에선 자카르타와 반둥 모두 고속철도 정차역이 시내 한가운데 있는 환승역이었거든요. 그와 비교하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이와 관련해선 중국 네티즌들의 해석이 설득력 있습니다. 변두리에 기존 역과 별도의 고속철도 역을 짓는 게 중국에서 주로 해오던 개발 방식이란 거예요. 대도시 한복판이 아닌 허허벌판에 역을 지으면 비용도 적게 들고 공사도 훨씬 쉽죠. 중국에선 도시가 워낙 빠르게 확장하니까, 이 방법이 그나마 통했는데요. 인도네시아 사정과는 전혀 맞지 않았던 거죠.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프로젝트는 이제 부패척결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됐다. 신화통신 뉴시스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프로젝트는 이제 부패척결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됐다. 신화통신 뉴시스


그리고 인도네시아 국민은 이런 눈에 보이는 문제만이 아닌, 다른 의혹도 제기합니다. 공사비용이 이렇게까지 불어난 건 틀림없이 공무원의 부정부패 때문일 거란 의혹이죠. 2021년 이 프로젝트 담당 장관을 맡았던 루후트 빈사르 판자이탄은 지난달 이런 폭탄 발언을 내놨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미 썩어버린 제품(=후시 프로젝트)을 받았습니다.” 국민들은 경악했죠. 이미 썩어있었다고? 그렇다면 왜 그걸 순순히 받아서 계속 진행한 거죠?

루후트는 단순한 장관이 아니라, 조코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실세’ 정치인이었습니다. 결국 조코위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정부가 무리해서 사업을 진행했단 고백이나 다름없는데요. 인도네시아 부패척결위원회는 이 고속철도 사업에 대한 조사에 나섰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얘기인데
중국과 손잡고 대규모 인프라 개발에 나섰다가 부채 위기에 몰린 나라. 인도네시아만 있는 게 아니죠. 중국은 시진핑 주석 임기 초기인 2014년부터 ‘일대일로’ 사업을 시작했고요. 고속도로, 고속철도, 항구, 공항, 댐, 발전소 등. 저개발국 곳곳에서 새로운 ‘실크로드’를 개척해 왔는데요.

까다로운 환경·인권에 대한 조건 없이 척척 거액을 빌려주는 중국 국영은행은 저소득국가에 반가운 존재였고요. 인프라 개발이 절실했던 나라들이 빚 무서운 줄 모르고 중국 돈을 끌어다 썼습니다. 그리고 이는 여러 나라에서 국가부채 폭증으로 이어졌는데요.

모든 빚이 그러하듯 빌릴 땐 좋지만 불어나는 건 한순간이죠. 중국에 막대한 빚을 진 아프리카 잠비아와 가나는 2020년 코로나 때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고 말았고요. 케냐를 포함한 아프리카 12개국도 부채 위기에 처했습니다. 특히 케냐의 이른바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철도(The Railway to Nowhere)’는 중국 부채 함정의 상징으로 통하죠. 중국이 대출해 준 대출 자금이 바닥나면서 원래 우간다까지 연결될 예정이었던 철도가 옥수수밭 한복판에서 갑자기 끝나버린 건데요.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케냐 정치권의 부정부패가 한몫했습니다.

케냐가 중국 수출입은행 대출로 건설한 표준궤철도의 모습. 원래 계획과 달리 철도는 우간다까지 연결되지 못한 채 허허벌판에서 끝난다. 현지에서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철도’로 불리는 이유다. 케냐 철도 공식 페이스북
케냐가 중국 수출입은행 대출로 건설한 표준궤철도의 모습. 원래 계획과 달리 철도는 우간다까지 연결되지 못한 채 허허벌판에서 끝난다. 현지에서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철도’로 불리는 이유다. 케냐 철도 공식 페이스북


동남아시아 국가 중엔 라오스가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국가 부채가 GDP의 116%일 정도로 위태로운데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1년 개통된 라오스-중국 철도가 그 주범입니다. 중국수출입은행의 대출로 건설한 이 철도가 라오스를 파산으로 모는 급행열차가 되어버렸죠.

여기에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국 인도네시아까지 부채 시한폭탄에 휩싸였으니. 이제 저개발국의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인기는 식어가게 될까요.

꼭 그렇진 않아 보입니다. 캄보디아는 여전히 40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중국의 지원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요. 미얀마 군부는 중국 국경 지역에서 미얀마 중심지를 잇는 무세-만달레이 철도 건설 자금을 중국에 요청 중이죠. 돈이 급하면 빚에 도사린 위험 따윈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요. 일대일로와 부채 함정 이야기는 아마도 계속될 겁니다. By. 딥다이브

해외 투자를 끌어들인 ‘인프라 주도 성장’을 추구했던 전임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 재임 시절엔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결국 무리한 투자가 부메랑이 돼 돌아오는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인도네시아의 자부심이던 ‘동남아 첫 고속철도’ 후시가 부채 위험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부진한 실적 탓에 중국에 진 막대한 빚의 이자를 갚기조차 어렵기 때문이죠. 인도네시아 정부가 중국과 부채 구조조정 협상에 나섰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중국의 ‘부채 함정’에 빠진 걸까요. 중국은 일본보다 낮은 사업비를 제시해 선정됐지만 공사 지연으로 사업비는 불어났고, 접근성 떨어지는 노선 설계로 수익성은 떨어집니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의심합니다.

-지난 10여년 간 중국은 저개발국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며 인프라 건설에 나섰는데요. 그 결과 여러 나라가 빚더미에 앉게 됐습니다. 인도네시아 고속철도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 실패의 최신 사례로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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