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야구 스타 김건우(오른쪽)과 아내 정재연 씨는 수제버거를 만들며 인생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김건우 제공
1987년 9월 13일은 ‘왕년의 야구 스타’ 김건우(62)에게 많은 것을 앗아간 날이었다. 1년 전인 1986년 MBC 청룡에 입단한 김건우는 18승 6패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2년차이던 1987년에도 승승장구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12승 7패 평균자책점 2.64를 기록하며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김건우는 여자친구를 데려다주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얼마나 세게 차에 치였던지 그는 충돌과 함께 15m 넘게 날아갔다. 양쪽 팔과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여자친구도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김건우는 피를 흘리면서도 여자친구에게 기어가 안부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김건우는 “횡단보도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갑자기 쾅 소리가 나면서 하늘이 노래졌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여자친구가 쓰러져 있는 걸 보고 다가가 ‘괜찮냐’고 물어봤다. 이후로는 전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선린상고 시절의 김건우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 모습. 동아일보 DB 불의의 교통사고 이후 ‘투수’ 김건우의 재능은 사라졌다. 수술과 재활을 거듭한 끝에 1989년 마운드로 돌아왔지만 예전처럼 묵직한 공을 던지던 김건우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김건우는 “시속 140km를 넘던 공이 120km대로 떨어졌다. 던질 수는 있었지만 팔꿈치가 통증이 이겨내지 못했다. 공을 던질 때마다 팔꿈치가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타자’로서의 재능이 남아 있었다. 선린상고 시절 그는 동기 박노준과 함께 고교무대를 휩쓴 스타였다. 투수로서도 잘했지만 타석에선 대포알같은 타구를 쏘아 올리곤 했다.
1992년 그는 타자로 변신했다. 모처럼 방망이를 잡았지만 강한 타구를 날렸다. 당당히 4번 타자로 나서며 한동안 최다안타 부문 1위를 달릴 정도로 선전했다.
그렇지만 하늘은 다시 한 번 그의 재능을 시샘했다. 빙그레와의 경기 중 땅볼을 치고 1루로 달려다가 장종훈과 충돌하면서 왼쪽 손목이 부러졌다. 그대로 시즌을 접어야 했다. 어느덧 나이는 30대를 넘어가고 있었다. 구단은 은퇴는 권유했고, 그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투수와 타자로 모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김건우의 선수 생활이 아쉽게 저물었다.
김건우가 수제 패티를 굽고 있다. 김건우 제공그래도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게 남아 있었다. 교통사고 당시 그와 함께 있었던 여자친구 정재연 씨다. 김건우는 한양대 1년 후배인 정 씨를 선배이던 정상흠 전 LG 코치 소개로 만났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사랑에 빠졌다.
교통사고로 김건우의 미래가 불안해졌지만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진 못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88년 결혼했다. 김건우는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예쁜 사람이었다. 큰 사고를 당한 후에도 나 같은 사람하고 결혼해 줄 정도로 착한 사람”이라며 “아내도 어느덧 할머니가 됐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예쁘다”라며 웃었다.
LG 트윈스 시절의 김건우의 모습. 동아일보 DB 한동안 그는 야구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걸 아쉬워했다. 은퇴 후 지도자로서도 크게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 LG 트레이닝 코치와 투수 코치를 맡았지만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프로 무대를 떠난 뒤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리틀 야구단을 운영하기도 했고, 2017년부터는 청담고 감독을 맡기도 했다. 중간중간 TV와 라디오 야구 해설자로서도 활동했다.
야구로서 큰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요즘 햄버거 패티를 구우며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지난해 충남 태안 연포해수욕장 인근에 자신의 이름을 딴 ‘건우수제버거’를 오픈했다.
서울살이에 지쳐 5년 전 귀촌한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농로를 까는 일이나 도랑을 만드는 막노동을 하기도 했고, 식당에서 고기를 써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김건우는 “처음 귀촌을 해서는 용돈벌이 삼아 이런저런 일을 했다. 그런데 첫 손주가 태어나고 둘째 손주도 딸 뱃속에 생기면서 ‘장남감이라도 사 주려면 돈을 좀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수제버거 집을 열게 됐다”고 했다.
리틀야구단을 운영하던 시절 김건우가 어린 투수의 투구를 지도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평생 야구만 해온 김건우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가 원래부터 요리에도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건우는 “원래부터 요리를 잘했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했다. 요즘도 김치도 담그고 각종 반찬도 만든다”고 했다.
김건우 표 수제 햄버거는 그의 요리 재능에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했다. 처음에는 패티 하나 굽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다음 손님이 오래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뚝딱 햄버거를 만들어낸다.
더블버거, 새우버거, 에그버거 등 종류도 다양하다. 맛이 좋은 데다가 가게 위치까지 좋아 대번 입소문이 났다. 여름 휴가철과 주말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김건우는 “좋은 재료를 쓰니까 맛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자주 찾아주신다. 또 저를 응원했던 팬들 중 멀리서 찾아주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며 웃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수제버거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건우. 김건우 제공 그는 주방에서 햄버거를 만들고, 아내 정 씨가 서빙과 포장을 한다. 김건우는 “처음에는 용돈이나 벌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말에는 주방에서 나오지 못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며 “내 가게에서 아내와 둘이 일을 하니 따로 월세가 인건비도 들지 않는다. 아내와는 눈빛만 봐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말했다.
주중에는 150~160개의 햄버거를 판매한다. 연휴나 공휴일에는 매출이 더 많이 나올 때도 종종 있다. 김건우는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회사원보다는 많이 버는 것 같다”며 “경제적으로 안정됐다는 점이 느낌”이라며 웃었다.
김건우는 MBC 청룡 시절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동아일보 DB 김건우는 햄버거집 사장으로 사는 요즘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건우는 “야구를 하느라 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햄버거 판 돈으로 아이들에게 용돈도 주고, 손주에게 장난감도 사 줄 수 있다. 아마도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인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목표는 80세까지 패티를 굽는 것이다. 김건우는 “나와 아내 중 한 명만 아파도 장사를 할 수 없다. 지금처럼 80세까지 건강하게 햄버거를 만드는 게 꿈”이라며 “젊은 때부터 꿈꿨던 텃밭은 가꾸는 생활을 하고 있다. 손님이 뜸할 때는 자유 시간도 많다. 중고 피아노를 사서 연습도 한다. 언젠가는 내가 작사, 작곡한 곡을 써 보고 싶다”고 말했다.
건우수제버거는 일주일 중 수요일에 하루를 쉰다. 이날은 김건우 부부가 경기 수원에 사는 딸 집을 방문하는 날이다. 김건우는 “평소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만 손주를 보러 가는 이날이 가장 행복하다”라며 “수원에 들를 때마다 대형마트에 들러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를 구매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인 것 같다”리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