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폰만 보는 가족식사… ‘무반응 금지게임’으로 말문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1일 01시 40분


스마트폰 속 영상으로 감정 경험 땐 ‘감정 문해력’ 저하로 표현 힘들어져
대면 상호작용으로 해석능력 키워야… 지속적인 관계에서 ‘옥시토신’ 분비
◇도파민 가족/이은경 지음/308쪽·1만8000원·흐름출판

부모가 스마트폰에 몰두할수록 그 모습은 아이의 신경 회로에 그대로 새겨진다. 저자는 아이들과 지하철을 탈 때마다,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어른들의 풍경 속에서 깨닫는다고 한다. “스마트폰은 정해둔 시간만큼만 쓸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무색한지를. 게티이미지코리아
부모가 스마트폰에 몰두할수록 그 모습은 아이의 신경 회로에 그대로 새겨진다. 저자는 아이들과 지하철을 탈 때마다,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어른들의 풍경 속에서 깨닫는다고 한다. “스마트폰은 정해둔 시간만큼만 쓸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무색한지를. 게티이미지코리아

유튜브를 켠다. 뭘 검색하려고 했더라? 모르겠다. 그냥 떠 있는 영상이나 보자.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도 똑같은 자세다. 이어폰을 꽂고 각자 스마트폰 기기 속으로 빠져든 개별 소비형 가족. 문득 묻게 된다. 우리 집 거실, 이대로 괜찮을까.

15년간 초등교사로, 이후 10년간 전국의 학교를 다니며 교육 전문가로 활동해 온 저자가 ‘도파민 가족’의 문제를 가족 시스템의 차원에서 짚어낸다. 소셜미디어, 온라인 쇼핑, 업무 메신저 알림에 길든 부모가 “폰 내려놔!”라고 말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이중 신호로 다가온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0세 미만 아동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1시간 15분, 10대는 2시간 41분이었다. 반면 30, 40대는 4시간을 웃돌았다. 부모가 걱정하는 아이의 도파민 중독은 사실 ‘가족의 거울’이다.

도파민 가족의 대화는 대개 비슷하다. 아이가 “엄마, 오늘 말이야” 하고 말을 꺼내면 “잠깐만, 지금 바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빠, 나 있잖아”라고 부르지만, 아빠는 여전히 화면을 보고 있다. 이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말을 줄이고 질문을 포기하며, 대신 영상 속 캐릭터에 반응하는 혼잣말을 늘려 간다. 말을 했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경험을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가장 먼저 배워 버린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도파민이 채운다. 화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반응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누른 ‘좋아요’ 하나에 맞춰 추천 탭이 바뀌고, 다음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거절당할 일이 없으니 안전하다. 그러나 그 반복이 뇌에 각인될수록 아이는 ‘말보다 스크롤이 안전하다’는 생각의 회로를 강화한다. 그 결과 생기는 게 ‘감정 문해력’의 저하다.

감정 문해력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이해하고 언어로 바꾸는 힘이다. 아이가 감정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한 경험이 적어서다. 스마트폰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대신 경험시킨다. 영상 속 인물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화내는 걸 지켜보며 아이는 마치 자신도 그 감정을 통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실험 결과, 며칠간 스크린을 완전히 차단하고 대면 상호작용만 한 아이들은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감정을 해석하는 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됐다. 감정도 언어처럼, 사용해야 자란다.

저자는 회복의 열쇠를 ‘옥시토신’에서 찾는다. 도파민이 즉각적인 쾌감의 호르몬이라면, 옥시토신은 느리고 지속적인 관계에서 분비되는 신뢰의 호르몬이다. 저자는 고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실천한 몇 가지 회복 연습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하루를 마치며 각자 1분 정도 감상을 녹음해 공유하는 ‘가족 음성 일기’가 있다. “오늘은 좀 우울했어”처럼 짧고 솔직하게 시작한다. 저녁 식탁에서는 ‘무반응 금지 게임’을 한다. 누군가 말하면 반드시 어떤 반응이든 해야 한다. ‘아빠 말에 무조건 반응하기’ 같은 미션을 정하면 오락성이 더해진다. 이렇게 간단한 실천만으로도 가족의 공기가 달라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청의 신호가 오갈 때, 도파민 대신 옥시토신이 흐르기 시작한다. 결국 ‘도파민 가족’의 회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복원에서 비롯된다.

#도파민 가족#스마트폰 중독#가족 관계#감정 문해력#옥시토신#대면 상호작용#부모-자녀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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