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환자의 보호자가 절망적인 얼굴로 묻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효과적인 치료제가 있다. 그런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 부담이 매우 크다”라는 설명을 덧붙여야 하는 현실 때문이다. 결국은 실비보험 여부를 묻는 질문으로 답변을 시작한다. 담도암 환자와 보호자가 마주해야 하는 장면이다.
담도암은 세계적으로 한국인 발병률 및 사망률이 매우 높다.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대부분의 환자가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 단계에서 진단된다. 이 경우 5년 생존율은 4.1%에 불과하다. 투병 중 나뭇가지처럼 좁은 담도의 해부학적 특성상 급성 염증이나 패혈증으로 상태가 갑자기 악화해 응급실을 찾는 일도 잦다. 그럼에도 담도암은 폐암이나 유방암 등 다른 암에서 활발히 사용되는 면역항암제와 같은 혁신 치료제들이 좀처럼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환자들은 오래전부터 기존 항암화학요법만 사용할 수 있어 치료 환경이 열악하다.
면역항암제 더발루맙은 이러한 치료 공백을 실질적으로 메우며 담도암에서 처음으로 장기 생존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존 항암화학요법과 병용했을 때 전체 생존율이 2배 이상으로 개선됐다. 특히 전체 환자군보다 한국인 환자군에서 더 큰 생존 이득이 확인되면서 국내 치료 환경을 바꿀 ‘첫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담도암 영역에서 ‘장기 생존’이라는 문장이 처음으로 근거를 얻은 것이다.
문제는 효과가 아니라 접근성이다. 허가된 지 약 3년째이지만 아직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의료진은 열악한 담도암 치료 환경에 매번 직면한다. 효과를 알고 있지만 비용 때문에 치료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포기하는 환자, 종양 크기가 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들을 지켜보는 것은 의료진에게도 고통이다. 치료 가능성이 의학적 판단이 아닌 경제력을 기준으로 좌우되는 것은 의료 체계의 존재 이유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치료제가 한국인 연구자가 주도해 전 세계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음에도, 정작 한국 환자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환자, 의료진뿐 아니라 대중들까지 담도암 환자를 위한 응원 메시지 전달에 나설 만큼 사회적 관심도 매우 높다. 담도암 면역항암제 급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 가능성이 입증된 치료를 ‘돈이 아닌 실제 근거에 따라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느냐’라는 정의의 문제다. 더 이상 이 논의가 지연돼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자들은 기다릴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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