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반도 전쟁상태”…李 “김정은, 진심 몰라 만남 불발”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0월 29일 17시 52분


[경주=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0.29
[경주=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0.29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87분 간의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열었다. 두 정상은 모두 발언에서 상대방 협상팀을 칭찬하거나, 과거 함께 찍은 사진을 소재로 분위기를 풀어나가며 유대감을 과시했다.

● 트럼프 “李대통령과 찍은 옛 사진 보니 지금이 나아” 농담도

두 정상은 언론에 공개된 모두 발언에서 회담의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덕담과 담소를 나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관세 협상팀을 가리켜 “매우 터프한 협상가들”이라면서도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함께 일하고 있다”며 “우리 공동체, 우리 국민, 지도자들 사이에는 위대한 사랑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향해 “당신이 보여준 오래전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을 봤는데, 지금이 더 나아 보인다. 뭔가 잘하고 계신 게 분명하다”며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정상회담장으로 오는 길 우리 정부가 준비한 환영 행사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매우 완벽했고 흠잡을 데 없었다”며 “나와 내 모든 내각을 대변해 말할 수 있는데, 전에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다”고 극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가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상태’라고 언급하며 이 대통령에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고 말했다. 이어 “당신과 당신의 팀,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문제를 열심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아직 남아있는 먹구름’이라고 표현하며 “우리가 이것을 함께 (해결)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이 대통령에게 말했다.

李, 美 반대해온 핵추진 잠수함 연료 공급 요구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도록 결단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핵무기 잠수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디젤 잠수함의 잠항 능력이 떨어져 북한, 중국 잠수함들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그래서 가능하다면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시면 저희가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하는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해 우리 한반도 동해와 서해의 해역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잠수함’ 또는 ‘핵잠’이라고도 불리는 핵추진 잠수함은 원자력 발전 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잠수함을 말한다. 기존의 디젤 기관 등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잠수함과 비교해 잠항(바다 아래서 작전을 수행하는 기간) 기간과 소음 등 면에서 우위에 있다. 현대전의 핵심 무기이자 ‘게임 체인저’로도 꼽힌다.

핵추진 잠수함 운용에 필요한 핵연료 구입은 우리 정부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미국 측에 요구해왔던 사안이다. 미국은 자국의 핵 비확산 원칙을 내세워 한국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한미 양국 간 원자력 연료의 공급 및 이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해석도 엇갈리는 상황이다. 이 협정은 군사적 목적의 핵연료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핵잠수함은 이 협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핵연료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부문에서 실질적 협력이 진척될 수 있도록 지시해주시면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李, 美요구 ‘방위비 증액’도 먼저 언급

이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방위비 증액 문제도 먼저 언급했다. 한국의 방위비 증액은 미국의 요구 사항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미국 방위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원과 증액을 확실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한미관계는동맹의 현대화 미래형 포괄적 전략형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위비 증액과 방위산업 발전으로 자체 방위 역량을 대폭 키울 생각”이라며 “대한민국 현재 방위비 지출은 북한 1년 국민 총생산의 1.4배로 압도적이다. 전세계 군사력 평가 5위로, 지금으로서도 부족하지 않지만 미국 방위부담 줄이기 위해 지원, 증액 확실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방위비 증액 의지와 핵잠수함 연료 공급 문제를 동시에 정상회담에서 꺼낸 것을 놓고 미국과의 ‘딜’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방위비 증액을 대가로 핵잠수함 연료 공급을 얻어내는 식의 협상이 진행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트럼프, 도요타 대미 투자 언급

트럼프는 한국과의 산업 협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우리와 조선산업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2차 대전 중에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선박을 가장 잘 건조하는 국가였지만 굉장히 나쁜 결정들이 있었고 조선업을 다루지 못하면서 능력 잃어버렸다”며 “이제 선박을 건조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비롯한 미국 여러 장소에서 한국과 미국이 함께 선박을 건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방한 직전 일본을 방문한 그는 이 대통령 앞에서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대미 투자를 거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요타가) 1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해 미국에 여러 개 자동차 공장을 짓기로 했다. 많은 미국인들을 고용할 것”이라며 “내 임기 말까지 21~22조 달러가 미국에 투자될 것이다. 이것은 사상 최고치”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인 가운데 일본의 대미 투자 사례로 한국에 압박을 가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북미 회담 불발에…李 “피스메이커” 트럼프 “한반도 전쟁상태”

이날 정상회담 전 모두 발언에서 두 정상은 공통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 성과를 치켜세웠다. 그는 “대통령 취임 9개월인데 지금까지 전세계 8곳 분쟁지역의 평화를 가져오는 ‘피스메이커’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한 내심과 뜻을 수용 못하고 이해 못한 상태라 (만남이) 불발됐지만 이것도 또한 하나의 씨앗이 돼 한반도에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만드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면서도 “김 위원장과 (관계) 진전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는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도록 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상식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미국-북한 관계가 해결되는 게 상식에 맞다고 본다”며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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