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모두발언
“재래식 잠수함, 北-中 추적에 제약
연료공급 허용땐 우리가 자체 건조
미군 해역 방어 부담도 줄어들 것”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사진기자단/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한국-미국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도록 결단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한반도 동해와 서해의 해역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줄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전에 제가 우리 대통령께 충분히 자세히 설명 못 드려 약간 오해가 있다”며 핵잠수함 연료 공급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핵무기 잠수함 만드는 것이 아니라 디젤 잠수함의 잠항 능력이 떨어져 북한, 중국 잠수함들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그래서 가능하다면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시면 저희가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하는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해 우리 한반도 동해와 서해의 해역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그 외에 전에 말씀하셨던, 이미 지지해 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만, 핵연료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 부문에서 실질적 협력이 진척될 수 있도록 지시해주시면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보통 ‘핵잠수함’, 줄여서 ‘핵잠’이라고도 불리는 핵추진 잠수함은 원자력 발전 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잠수함을 말한다. 기존의 디젤 기관 등을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잠수함은 잠항 기간(바다 아래서 작전을 수행하는 기간)에 제한이 있는 반면, 핵잠수함은 거의 이런 제약 없이 바다에 숨어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소음도 기존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극도로 적기 때문에 적에게 탐지될 위험도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무제한으로 심해 아래에 숨어있다가 적국에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적의 항공모함 등을 타격할 수 있기 때문에 핵잠수함은 현대전의 핵심 무기이자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핵잠수함을 보유, 운용하는 국가는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인도 등 6개국 뿐이다. 여기에 미국, 영국과 함께 오커스(AUKUS) 안보 동맹을 맺은 호주가 추가로 미국으로부터 핵잠수함을 공급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해군력이 강한 일본 역시 핵잠수함 도입을 암암리에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잠수함은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무기이기 때문에 보유 여부가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우리나라는 서해는 중국, 동해는 일본과 닿아있기 대문에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는 중국이나 일본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핵추진 잠수함 운용에 필요한 핵연료 구입은 우리 정부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미국 측에 요구해왔던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에도 우리 정부는 미국 측에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 필요성과 계획을 설명하고, 이를 위한 핵연료(저농축우라늄)를 미국에서 공급받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측은 자국의 핵 비확산 원칙을 내세워 한국 정부의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당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동아일보 질의에 “핵잠수함의 연료는 우리가 한국에 판매한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설치하는 데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데다 이를 운영, 관리할 전문 인력과 유지보수 장비들이 따라붙어야 하는 문제”라고 답했다.
한미 양국 간 원자력 연료의 공급 및 이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한미 원자력협정의 해석도 엇갈리고 있다. 이 협정은 군사적 목적의 핵연료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핵잠수함은 이 협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경북 경주국립박물관에 도착하는 미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사진기자단이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방위비 증액 문제도 먼저 언급했다. 한국의 방위비 증액은 미국의 요구 사항 중 하나다. 이 대통령은 “미국 방위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원과 증액을 확실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한미관계는동맹의 현대화 미래형 포괄적 전략형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위비 증액과 방위산업 발전으로 자체 방위 역량을 대폭 키울 생각”이라며 “대한민국 현재 방위비 지출은 북한 1년 국민 총생산의 1.4배로 압도적이다. 전세계 군사력 평가 5위로, 지금으로서도 부족하지 않지만 미국 방위부담 줄이기 위해 지원, 증액 확실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방위비 증액 의지와 핵잠수함 연료 공급 문제를 동시에 정상회담에서 꺼낸 것을 놓고 미국과의 ‘딜’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방위비 증액을 대가로 핵잠수함 연료 공급을 얻어내는 식의 협상이 진행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그간 성과도 치켜세웠다. 그는 “대통령 취임 9개월인데 지금까지 전세계 8곳 분쟁지역의 평화를 가져오는 ‘피스메이커’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위대한 역량이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내는 큰 업적으로 남으면 대통령께서 세계사적으로 큰 일을 이루는거지만 한국민으로서도 큰 문제를 해결하는 정말로 큰 성과가 되겠단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진심을 아직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 (만남이) 불발됐지만 면담 요청하고 언제든 받아들인다고 한 것은 그 자체로 한반도 평화의 온기를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아직까지는 김 위원장이 대통령님의 진정한 내심과 뜻을 수용 못하고 이해 못한 상태라 불발됐지만 이것도 또한 하나의 씨앗이 돼 한반도에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만드는 단초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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