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작가
출판사 편집자 통해 ‘노동 가치’ 포착
“사회 새내기-일에 찌든 이 읽었으면”
김혜진 작가 제공 ⓒ김승범
일상에서, 나아가 누군가는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수 있다.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혜진 작가(42·사진)의 새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문학동네)은 ‘업(業)’이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전작 ‘딸에 대하여’에서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그렸던 김 작가는 이번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응시했다.
소설은 주인공 홍석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입사한 20대 시절부터, 주간(主幹)의 자리에 오르는 50대까지의 시간을 좇는다.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김 작가는 “홍석주라는 인물에게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되어 가는지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며 “20대의 일과 30대의 일, 40대의 일, 50대의 일은 분명 다르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만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 달라지고 바뀌어 가는지를 보여주려면 긴 시간을 펼쳐놓은 형식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설에는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이 펼쳐지진 않는다. 그 대신 긴 세월 자신에게 주어진 글을 살피고 다듬는 이의 묵묵함과 성실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새내기 시절 홍석주가 관찰한 선배 편집자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된다.
“하얀 와이셔츠 위에 황톳빛 가죽 토시를 낀 채 종일 뭔가를 읽고 또 읽는 사람.”
“여러 권의 책을 껴안듯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엔 군데군데 펜 자국이 남아 있었고, 흑연과 잉크가 묻은 손날은 거무스름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섬세하게 포착해 냈다. 일에 충실한 사람에 대한 잔잔한 묘사에서 묘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일에 대한 묵묵함과 성실함. 현실에서도 그런 태도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좋다”며 “용기도 얻고 위로도 되고, 내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소설의 주된 배경은 1980, 90년대다. 이 시절 편집 현장이 세밀하게 복원돼 있어,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세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자료를 손수 찾아야 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자료 요청 ‘쪽지’가 돌면, 편집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실로 향했다. 백과사전, 연감, 도감, 전집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연표와 조선시대 복식을 기록한 책을 찾았다. 원하는 자료가 없으면 인접 단어를 더듬으며 우회적으로 접근했다.
이 고된 과정은 소설 속 홍석주의 선배가 말하듯 “책에 실린 정보는 틀림이 없어야 하니까”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한 문장, 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며칠을 매달리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 속도와 효율이 앞서는 지금과 달리, 그때의 일터에는 느리지만 단단한 정확함이 있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새내기가 읽으면 얼마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모두가 예외 없이 서툴고 어설프니까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생각이 많아진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일과 나 사이에 놓인 어떤 시간을 견뎌야 만나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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