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웹툰高[go]〉(Webtoon High School: Drawing Tomorrow) 전시회 현장.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지난 19~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 새롭게 문을 연 이색 고등학교가 웹툰 마니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곳의 정체는 ‘〈내일의 웹툰高[go]〉(Webtoon High School: Drawing Tomorrow, 이하 내일의 웹툰고)’. 웹툰 전시회이자, 국내 웹툰 업계의 차세대 주역이 될 신인 작가 26명의 작품을 공개하는 데뷔 무대였다. 한국 웹툰 산업의 미래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뜻에서 행사장은 고등학교 콘셉트로 꾸몄고, 명칭엔 고등학교의 ‘고(高)’와 신예들이 앞으로 ‘나아간다(Go)’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고등학교답게 미스터리부, 역사연구부, 판타지부, 운동부, 로맨스부 등 동아리방마다 여러 장르별 작품이 전시됐다. 한 관람객은 전시된 웹툰별 장면과 소개 글을 살피며 “처음 알게 된 작가들인데 그림체와 이야기가 새롭다”고 호평했다.
전시에 참여한 26명의 작가는 모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주최하는 ‘2025 웹툰산업 전문인력 양성사업’의 교육생이다. 해당 사업은 국내 콘텐츠 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창작자(작가) 및 산업인력(PD) 등 웹툰 업계의 실무형 인재를 육성하는 프로젝트다. 내일의 웹툰고는 교육생들의 창작물을 대중에게 최초 공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내일의 웹툰高[go]〉(Webtoon High School: Drawing Tomorrow) 전시회 현장.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콘진원 관계자는 “한국이 웹툰 산업의 종주국이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K-웹툰이 흥행한 점을 고려해 국내 콘텐츠 산업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웹툰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지역별 웹툰 작가 양성에 주력한 데 이어, 올해는 소수 정예의 작가와 PD를 집중적으로 육성했다.
특히 이번 사업의 핵심 목표는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이 아닌, 처음부터 웹툰으로 기획된 오리지널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를 발굴하는 것이다. 오리지널 웹툰 IP는 제작 과정의 특성상 웹툰 플랫폼 및 에이전시들에게 수요가 적다. 이미 스토리와 캐릭터가 갖춰진 웹소설을 재가공하는 방식보다 오리지널 웹툰 IP 제작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른 제작과 매출 확보를 중시하는 웹툰 플랫폼 및 에이전시들의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쉽다. 이들을 적극 지원해 국내 웹툰 산업의 경쟁력을 넓히겠다는 취지다.
콘진원 측은 “웹툰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교, 연관 교육을 운영 중인 기관 등 ‘웹툰 창작자 양성 인프라’를 보유한 기관들과 협업해 교육생에게 맞춤형 멘토링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지역문화산업진흥기관 6곳, 대학교 2곳, 웹툰 특성화 고등학교 1곳의 교육 과정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축적해 온 콘텐츠 제작자 육성 노하우를 접목했다. 현직자와의 일대일 멘토링을 통해 교육생 개개인의 부족한 역량을 집중 강화한 점이 핵심이다. 저작권법 등 웹툰 업계 종사자가 알아야 할 기본 지식을 다루는 공통 교육을 제외한 대부분의 과정이 일대일 멘토링으로 진행됐다. 채색, 스토리 기획, 대사 작성 등 교육생마다 작가로서 보완할 점이 다르기 때문에 고정된 커리큘럼이 아닌 유연한 밀착 멘토링에 주안점을 뒀다.
지난해 추진된 PD 양성 과정은 국내 주요 웹툰사 6곳과 협력해 운영했다. 각 기업이 PD 채용 시 중시하는 역량에 맞춰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현직자를 초청한 강연과 모의 면접 등을 진행했다. 지난해 사업에 참여한 PD 교육생 10여 명은 수료 직후 웹툰사에 채용됐다.
올해 사업에 참여한 웹툰 작가 정지인, 정현진 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웹툰산업 전문인력 양성사업은 웹툰의 완성도를 높이며 성장하고, 그 결과물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소감을 밝혔다. 두 작가는 전문가와의 멘토링으로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이번 사업에 지원했다. 웹툰학과에 재학하며 다방면의 이론을 학습한 정지인 씨는 실제 웹툰 제작 경험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참여했다. 웹툰 학원 강사로 활동하던 정현진 씨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지원했으며 “필수 이론 교육뿐 아니라 전문가의 맞춤형 멘토링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덧붙였다.
두 작가는 멘토와 꾸준히 소통하며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웹툰 관련 교육과 구별되는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꼽았다. 평소에는 주로 혼자서 작업하기 때문에 기획 방향의 적절성이나 채색 완성도 등을 스스로 판단해야 했지만, 이번 사업에서는 멘토링을 통해 작품을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고 개선했다는 입장이다. 정지인 씨는 “인물의 대사를 작성하는 과정이 어려웠는데, 멘토와 한 팀으로 꾸준히 소통해 여러 팁을 배웠다”며 “배움의 크기가 큰 만큼 고민하는 시간도 줄어서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고 회상했다. 정현진 씨는 “혼자 작업할 때는 부족하다고 느껴도 정확한 문제를 찾기 어려웠지만, 올해 사업에서는 전문가의 피드백 덕분에 즉시 파악하고 보완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전했다.
두 작가는 이번 사업을 통해 완성한 웹툰을 내일의 웹툰고에서 공개했다. 정지인 씨의 작품명은 ‘늑대의 숲’이다. 인간 소녀가 숲 속의 늑대인간을 만나 숲의 비밀을 함께 파헤치며 가정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전시장에 비치된 QR코드로 작품을 감상하던 한 관람객은 “늑대의 숲이라는 배경이 신비롭고, 소녀를 귀찮아하면서도 세심히 챙기는 늑대인간의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정현진 씨의 작품 ‘준의 다이어리’는 전직 킬러였던 주인공이 과거를 청산하고 평범한 일상을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을 담았다.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주제로, 한 번도 인간적인 삶을 살아보지 못한 인물이 인간다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표현했다.
〈내일의 웹툰高[go]〉(Webtoon High School: Drawing Tomorrow) 전시회에 공개된 정지인 작가의 늑대의 숲, 정현진 작가의 준의 다이어리두 작품은 이번 사업의 멘토링을 거치며 실제 플랫폼 검수 수준에 맞춰 완성됐다. 작가 개인이 세세한 플랫폼 검수 기준을 모두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전문가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수정 작업이 이뤄졌다. 정지인 씨는 “스릴러 장르가 포함된 작품이라 자극적인 색감을 사용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멘토링을 통해 독자에게 부담스럽지 않도록 조정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2025 웹툰산업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웹툰 시장의 전문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성장의 발판’이라고 비유했다. 정지인 씨는 “요즘 웹툰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탓에 작품을 대중에게 공유할 기회가 흔치 않은데, 이번 사업을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전시회에서 직접 보여줄 수 있어 뿌듯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정현진 씨는 “웹툰 작가로서의 생각을 전문가들과 교류할 수 있어 뜻깊었다”며 “특히 내일의 웹툰고 전시를 통해 독자의 실제 반응을 확인하고 제3자의 시선에서 작품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일의 웹툰고에서는 참여 교육생과 기업을 연결하는 매칭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국내 주요 웹툰 플랫폼, 콘텐츠 제작사, IP 에이전시 관계자들이 전시장을 방문해 교육생들과 일대일 미팅을 진행하며 연재 제안, 기획 협업, IP 계약 등을 논의했다.
전우영 콘진원 콘텐츠기반본부 본부장대행은 “웹툰산업 전문인력 양성사업은 한국 웹툰 산업 발전을 위한 초석이자 미래 성장 동력을 다지는 유의미한 프로젝트”라며 “앞으로도 웹툰 작가와 PD 등 창작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다양한 오리지널 웹툰 IP를 지속적으로 발굴 및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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