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연결 ‘랙 차단기’ 안 내려”… 경찰, 공사업체 작업자 진술 확보
당시 배터리 충전율도 80% 달해… 전류 남은채 작업땐 불꽃 등 위험
현장 찾은 李대통령 “신속 복구”
李대통령, 피해복구 상황 점검 10일 이재명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왼쪽), 이재용 국가정보자원관리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과 함께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복구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국가 전산 자원의 중요도는 국방에 비견할 만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신속한 복구와 확고한 재발 방지 대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제공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를 수사 중인 경찰이 배터리 분리 작업 당시 일부 전원이 꺼지지 않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배터리에 전류가 남은 채 작업이 진행됐다는 것으로, 작업자 과실로 불이 났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주 전원만 끄고, 배터리 내부 전원은 그대로
10일 대전경찰청은 연휴 기간 추가 수사 결과를 공개하며 ‘작업 당시 비상전원장치(UPS)의 주 전원은 차단했지만, 배터리와 연결된 부속 전원(랙 차단기)은 내리지 않았다’는 공사업체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UPS 내부는 냉장고처럼 생긴 선반 구조로, 리튬이온 배터리 묶음(모듈) 약 12개가 꽂혀 있었다”며 “UPS는 외부 전력을 차단하면 꺼진 것처럼 보이지만, 배터리끼리 연결된 보조 회로(부속 전원)에는 여전히 전류가 흐를 수 있다. 이를 함께 차단하지 않아 내부 회로에 전류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국정자원 대전 본원 5층 7-1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기 위해 UPS에서 분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찰은 “배터리 쪽에서 불꽃이 튀었다”는 목격자 진술도 확보한 상태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전류가 완전히 차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리할 경우 불꽃이나 과열이 일어나 화재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이 때문에 배터리 업체들은 작업 전 전원을 모두 차단한 뒤 분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에 화재 직후 작업자가 배터리 전원을 끄지 않은 채 분리해서 불이 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당시 정부는 작업자 진술을 근거로 “UPS 본체로 들어오는 외부 전원은 차단하고 작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작업 당시 배터리 충전율이 약 80% 수준인 점도 확인됐다.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이 제시한 안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배터리에 남은 전류를 방전시켜 충전율을 30% 이하로 낮춘 뒤 작업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경찰은 이르면 11월 초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를 분해해 내부 회로를 검사하고, 동일 기종 배터리를 이용한 재연 실험도 진행할 예정이다. 실제로 배터리 회로에 잔류 전류가 남아 있었는지, 그로 인해 과열이나 합선이 발생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도 의뢰했다.
경찰은 이날 업무상 실화 혐의로 공사업체 관계자 1명을 추가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로 입건된 인원은 총 5명이다. 화재 당시 현장 책임자와 작업자 등 26명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 복구율 30%… 李 대통령 “전산자원 중요도, 국방에 비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화재 발생 2주가 지난 10일 기준 전체 709개 시스템 중 214개(30.2%) 서비스가 정상화됐다. 1등급 핵심 정보시스템은 40개 중 30개가 복구돼 재가동 중이다.
행정체계 공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복구 과정에서 해킹, 스미싱 등 사이버 범죄로 이어질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보안 업계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트래픽이 몰리거나 보안 장비를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해킹 등에 새로운 취약점이 생길 수 있다”며 “완전 복구 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등과 함께 국정자원 화재 발생 14일 만에 현장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 전산자원의 중요도는 국방에 비견할 만하다”며 “예산과 인력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투입해 복구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실은 “연휴 기간 중 유일한 평일인 이날, 이 대통령이 연차 중이었지만 사안의 심각성과 복구 인력 격려 필요성을 고려해 현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화재 직후 이 대통령이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던 것을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