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매치①] 1996 ‘애인’ vs 2016 ‘공항 가는 길’…파격과 공감 사이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0월 21일 06시 57분


이상윤·김하늘의 KBS 2TV 드라마 ‘공항 가는 길’(오른쪽사진)은 20년 전 방송한 유동근·황신혜의 ‘애인’과 닮은 점, 다른 점이 공존한다. 극의 분위기, 방송시기, 감성을 자극하는 OST 등으로 인기를 끌면서도 사랑을 대하는 시각에는 차이를 보인다. 사진제공|MBC·스튜디오 드래곤
이상윤·김하늘의 KBS 2TV 드라마 ‘공항 가는 길’(오른쪽사진)은 20년 전 방송한 유동근·황신혜의 ‘애인’과 닮은 점, 다른 점이 공존한다. 극의 분위기, 방송시기, 감성을 자극하는 OST 등으로 인기를 끌면서도 사랑을 대하는 시각에는 차이를 보인다. 사진제공|MBC·스튜디오 드래곤
사랑은 의지대로 이어갈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운명적인 감정이다. 설령 배우자가 있는 남녀의 사랑이라고 해도 윤리적인 잣대를 거둔다면 그 감정만큼은 탓할 수 없다. 김하늘·이상윤 주연의 KBS 2TV 수목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 불륜을 미화한다는 비판보다 시청자의 공감을 얻는 정통 멜로로 각광받는 이유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 아니다. 꼭 20년 전인 1996년 유동근과 황신혜가 출연한 MBC 드라마 ‘애인’이 있었다. 30대 기혼 남녀의 사랑을 담아내며 사회적 이슈와 논란을 불러모은 드라마는 한편으로 여전히 웰메이드 멜로로 기억되는 명작이다. 20년 차이로 탄생한 두 편의 ‘문제적 드라마’를 파헤쳤다.

자녀 매개·남편에 대한 염증 등 공통점
‘애인’은 사랑에 집중 ‘공항’은 관계 조명
20년 세월…남녀관계 달라진 시선 반영


2016년의 ‘공항 가는 길’과 1996년의 ‘애인’은 공통점도, 차이점도 확실하다. 기혼남녀의 사랑을 그리는 만큼 각 인물에 그럴 만한 개연성을 부여하며 공감대를 높인다. 두 드라마는, 캐릭터는 물론 설정의 유사성도 크다. 물론 차이도 있다. 20년을 사이에 두고 변화한 사회적 분위기와 그에 따라 달라진 시청자의 시선이다.

● 공통점…‘공감’과 ‘위로’

두 드라마 사이에는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다. 하지만 긴 시간의 격차가 무색하리만큼 많은 부분에서 ‘오버랩’된다. 각각 가정이 있는 남녀가 만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진다’는 큰 얼개 외에도 캐릭터 설정, 감각적인 배경음악, 절제된 영상미 등이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공항 가는 길’에서 김하늘과 이상윤의 인연은 자녀를 통해 시작된다. 극중 승무원인 김하늘은 딸을 말레이시아로 유학 보내고, 딸의 룸메이트의 아빠 이상윤과 처음 인연을 맺는다. 딸을 해외로 보낸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나누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애인’도 자녀를 매개체로 삼았다. 놀이공원에 놀러간 유동근의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공교롭게도 황신혜의 바지를 더럽히게 되면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두 드라마 모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상대를 아이가 맺어준다는 극적인 상황으로 설명했다.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 설정도 겹친다. 김하늘이 다정다감한 이상윤에게 마음을 여는 순간은 고압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신성록)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면서 시작됐다. 황신혜 역시 출세지향적인 남편(김병세)에게 염증을 느끼면서 유동근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 두 드라마가 “뻔한 불륜”이라는 비난보다는 “아름다운 불륜”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것은 등장인물의 절제된 대사, 빼어난 영상미, 감각적인 배경음악의 힘이 크다.

‘애인’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두 사람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소재라고 해도 두 사람의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해 공감을 끌어냈다. 여기에 연출을 맡은 이창순 PD가 빚어낸 영상미, 화면을 타고 흐르는 캐리 앤 론의 ‘아이 오 유’는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공항 가는 길’이 ‘막장’ 논란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도 워킹 맘의 애환, 자식이 전부인 부모의 애달픔 등 지극히 현실적인 삶과 일상을 담담히 그려가면서 그 안에서 위로와 공감을 풀어낸 덕분이다. 서울의 남산, 한강 등 드넓게 펼쳐진 장소를 주로 카메라에 담으며 잠시나마 시청자들의 숨통을 틔어준 영상미도 돋보인다.

차이점…20년의 세월 그리고 시선의 자리

‘공항 가는 길’은 김하늘과 이상윤이 나누는 애틋한 사랑이 중요한 줄기이지만,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은 사람과 사람이 맺어가는 ‘관계’다. 드라마는 다양한 인물을 공평하게 비추면서, 뜨거운 사랑보다 사람 사이의 ‘인연’과 ‘운명’의 메시지를 강조한다.

김하늘, 이상윤은 자신들의 관계를 ‘연인’이 아닌 ‘3무(無) 사이’로 규정한다. 바라지 않고, 만지지 않고, 헤어지지 않는 관계라는 의미다. 분명 사랑하지만 거리 두기도 확실히 한다. 때문에 제작진은 두 인물이 스킨십을 나누고 애정을 확인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데 인색하다.

반면 ‘애인’은 오직 사랑에 집중했다. ‘고독을 안고 사는 30대 남녀의 사랑’이라는 극의 설명답게 유동근과 황신혜는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그 감정을 주저 없이 표현한다.

더욱이 ‘애인’은 키스신은 물론 당시 TV드라마에서 보기 어려운 수위 높은 베드신까지 담아낸 탓에 ‘불륜 미화’를 둘러싼 사회적인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대중매체를 통한 창작물 표현에 지금보다 완고했던 당시 사회분위기를 고려하면 ‘애인’은 파격 그 자체였다. TV 드라마의 소재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논란으로 번졌고, 1996년 국정감사에서까지 ‘사회적 폐해가 심각하다’는 질타를 받았다.

연출을 맡은 이창순 PD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두 사람의 사랑으로, 불륜과는 다르다”(1996년10월 경향신문)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례적으로 관련 토론회까지 벌였다.

‘애인’이 먼저 호된 질타를 받은 덕분일까. 비슷한 길을 걷는 ‘공항 가는 길’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불륜이라는 질타보다 ‘그럴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마니아 팬의 열렬한 지지도 얻는다. 단정 지을 수 없는 남녀의 관계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시청자의 달라진 눈높이가 감지된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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