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좀 모자란 女정치인, 더 못난 보좌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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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HBO 드라마 ‘빕’ 시즌3

미국 정치시트콤 ‘빕’의 부통령과 참모진은 난파선처럼 삐걱거리면서도 워싱턴 정가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간다. HBO 캐나다 홈페이지 촬영
미국 정치시트콤 ‘빕’의 부통령과 참모진은 난파선처럼 삐걱거리면서도 워싱턴 정가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간다. HBO 캐나다 홈페이지 촬영

정의감이 넘치는 ‘완벽남’(‘웨스트 윙’의 제드 바틀릿 대통령)도,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가(‘하우스 오브 카드’의 프랭크 언더우드)도 없다. 그 대신 틈만 나면 말실수를 하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과 그보다도 못난 참모진이 있다.

미국 HBO가 시즌3까지 내보낸 정치시트콤 ‘빕(Veep·부통령)’은 미국 대통령이 아닌 부통령이 주인공이다. 한때 대통령 후보로 손꼽혔던 전도유망한 여성 정치인 셀리나 메이어(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가 부통령직을 수락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국 부통령은 공식적으로는 2인자지만 실제로는 웬만한 상원의원보다 못한 자리다. 정치는 결국 선거이고, 선거에서 이기려면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 1인자의 그늘에 가린 2인자에게 그만큼 힘든 일도 없다. 친환경 직장 만들기나 비만 퇴치 같은, 대통령이 하기 싫거나 해도 폼 안 나는 일만 떠안는다. 의회 개혁 같은 큰일을 하려 해도 의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어딘가 모자란 자리만큼이나 등장인물의 면면도 뭔가 부족하다. 부통령 메이어는 자기중심적이고 칭찬에 약한 인물이다. 정치적 신념 따위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바뀌고 일이 틀어지면 보좌관을 탓하기 바쁘다. 보좌관들 역시 문제가 생기면 임시방편으로 모면하려 하고, 부통령이 위기에 처하자 각자 살길을 찾는다.

이들은 인터뷰용 녹음기가 켜진 줄도 모르고 선거 후원자들을 실컷 비웃다가 언론에 그 내용이 낱낱이 보도돼 곤욕을 치른다. 백악관에서 의원 장례식에 보내는 추모 카드에 부통령이 서명을 잘못하자, 그 카드를 백악관에서 훔쳐내 대통령 서명을 위조하려는 내란 음모급 대책을 쓰기도 한다. 드라마 속 미국 정계는 인터넷 여론에 목을 매고 거래와 타협으로 적당히 문제를 넘기는 곳이다.

‘빕’은 2인자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화장실 유머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정치 풍자와 버무려내는 대본과 배우들 간의 연기 호흡은 미국 시트콤 중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시즌3에서 메이어는 현직 대통령의 사임으로 첫 여성 대통령에 ‘급취임’한다. 잠깐 맛본 일인자의 권력을 시즌4에서 얼마나 더 만끽할 수 있을까. 내년에 방영되는 시즌4에는 미드 ‘하우스’에서 닥터 하우스 역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휴 로리도 합류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빕#HBO#보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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