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잔받은 ‘7번방’ 1200만명, 칭찬받은 ‘해원’ 2만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2일 03시 00분


■ 전문가 영화평점, 흥행과 엇박자

평론가들의 혹평과 관객의 열광 사이에서 1200만여명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 전문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계기를 던져 준 영화다. 뉴 제공
평론가들의 혹평과 관객의 열광 사이에서 1200만여명을 동원한 ‘7번방의 선물’. 전문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계기를 던져 준 영화다. 뉴 제공
관객과 평론가 사이가 너무 멀어진 것일까. 최근 평론가들이 혹평했지만 관객은 열광한 영화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7번방의 선물’ ‘박수건달’ ‘타워’ ‘늑대소년’ 등이 이런 영화들이다. 관객은 이제 평론가의 별점보다 다른 관객이 인터넷에 올린 평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입소문으로 영화를 고른다.

○ 전문가 따로, 관객 따로

“캐릭터 학대를 통해 얻어낸 눈물의 의미는 뭘까” “충무로식 기획 코미디”….

‘7번방의 선물’ 시사회가 끝난 뒤 전문가로 분류되는 평론가와 영화담당 기자들은 네이버에 혹독한 평가를 올렸다. ‘7번방…’의 네이버 전문가 평점 평균은 10점 만점에 6.6점. 별점으로 치면 3개 반도 안 된다. 동아일보가 매긴 전문가 평점도 5.5점이었다. 반면 관객 평점은 9.2점으로 점수가 후했다. ‘7번방…’은 10일까지 1217만 명을 모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늑대소년’도 마찬가지. 전문가 평점은 6.4점인데 관객 평점은 8.7점. 전문가들은 “‘가을동화’ 같은 ‘너도 펫’이다” “초를 치는 들러리들”이라며 혹평했지만 관객들은 “가슴 뭉클했고 여운이 짠하게 남네요”라며 665만 명이 달려가 영화를 봤다.

흥행에 성공한 ‘타워’(518만 명) ‘박수건달’(389만 명) ‘브레이킹 던 파트2’(265만 명)도 전문가와 관객의 반응이 갈렸다. ‘타워’의 전문가 평점은 5.5점인 데 비해 관객 평점은 8.2점이었다. ‘박수건달’은 6.3점 대 8.3점, ‘브레이킹 던 파트2’는 5.9점 대 8.7점으로 ‘엇박자’를 이뤘다.

전문가가 호평한 작품을 관객이 외면한 경우도 있다.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전문가들은 7.5점의 높은 점수를 줬다. “가봤던 곳과 해봤던 일인데도 번번이 미끄러지는 처연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2월 28일 개봉해 10일까지 2만1750명이 봤을 뿐이다. 인터넷에는 “이건 예술영화가 아니라 공감제로” “종이에 끼적거린 작가의 생각 한 줄조차 발견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혹평도 올라왔다.

○ “관객, 영화 감상법 배워야” “전문가의 시각 변해야”

평론가와 관객의 거리는 최근 더 멀어졌다. 평론가들 중에는 굳이 그 간극을 메울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김시무 부산국제영화제연구소장은 “평론가들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보는 반면 관객은 콘텍스트에 따라 영화를 고른다. 즉 관객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울고 웃을 영화를 찾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평론가는 관객이 보지 못하는 영화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민병록 영화평론가협회장(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은 “요즘 한국영화계가 액션, 코미디, 신파 등의 요소를 섞어 대중에 영합한 작품만 쏟아내고 있다. 관객의 식견이 넓어져야 한다”고 했다. 표피적인 즐거움을 주는 영화만 좇는 세태를 평론가는 계속 비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지욱 평론가는 “짜장면에만 길든 관객에게 고급 요리의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영화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전문가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터넷을 통한 지식의 확산에 따라 생겨난 ‘대중의 지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텍스트가 ‘훌륭하다’는 의미가 근대에는 메시지, 짜임새가 좋다는 것이었지만 탈근대에는 즐거운 것으로 바뀌었다”며 “전문가들도 자기만의 문법을 바꿔 대중의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평론가는 “그동안 하늘 높은 곳에서 관객을 바라봤던 전문가들이 시선을 수정해야 한다. 대중의 관점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평론가#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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