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 커피향 목소리로 겨울을 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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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단독 공연

‘널 위한 나의 마음이/이제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하지만 잊진 않았지/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 안던 너의 손을…’(‘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마당과 집안을 뛰어노는 강아지 네 마리를 보면서 노트에 노랫말을 적어본다. 수천 번은 불렀던 노래지만 입으로 중얼거리며 쓰고 또 쓴다. 2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단독 공연을 갖는 싱어송라이터 장필순(48)의 최근 일상이다.

“혹시나 무대 위에서 가사를 잊어버릴까봐 그래요. 요즘은 무대 내 스크린에 가사를 띄우기도 한다던데, 영 익숙지 않아서….”

1989년 ‘어느새’로 데뷔한 뒤 허스키하면서도 따뜻한 목소리로 포크 가수계에서 도드라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를 떠올리면 가사 외우기에 정성을 쏟는다는 말은 의외였다. 활동이 뜸했던 탓일까. 정규 6집(2002년) 이후 후속 앨범을 내지 않았고, 지난해 8년 만에 서울 대학로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뿐 공연소식도 뜸했다.

“날이 갈수록 무대 공포증이 커지는 것 같아요. 전 장난으로라도 ‘재미있겠다, 해볼래’ 하고 무대에 선 적이 없어요. 잘 불러야 한다는 욕심이 있어서 쉽게 무대에 오르지 못했죠.”

“모든 노래 안에 제 이야기가 담겼어요.” 장필순의 공연엔 게스트가 없다. 좋은 공연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자신의 노래만을 오롯이 전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모든 노래 안에 제 이야기가 담겼어요.” 장필순의 공연엔 게스트가 없다. 좋은 공연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자신의 노래만을 오롯이 전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그로서는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다. 어느 순간 “이게 뭔가” 하는 허탈감이 들어 2005년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 시내에서도 차로 30∼40분 더 들어간 외진 곳에 집이 있다. 텃밭에 배추 무 고추 등을 기르고, 커피 생두를 사 프라이팬에 볶아 내려 마시며 “느리지만 풍성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을 떠나자 그의 오랜 음악 동료들이 제주도를 찾아 며칠이고 몇 달이고 머무는 일이 잦아졌다. 27일 무대에 함께 서는 함춘호(기타), 김정렬(베이스), 박용준(건반), 신석철(드럼)도 제주 집을 자주 드나드는 단골들이다. 이들과 함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그는 항상 내 안에 있네’ ‘헬리콥터’ ‘고백’ 등 그동안의 히트곡들을 새롭게 편곡해 선보일 예정이다.

무대 공포증 다음으로 걱정하는 것이 음향이다. 장필순은 “가사를 잘 전달하는 데 신경을 쓴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춤도 화려한 퍼포먼스도 없이 그냥 가만가만 노래만 부르는데도 공연 말미엔 어김없이 녹초가 된다.

“그거 아세요? 시원시원하게 내지르는 노래보다 가만히 기운을 모아 부르는 노래가 더 힘들어요. 확 쏟지 않으면서, 또 너무 약하지 않게 조절하며 공연하다 보면 나중에 탈진할 정도가 되죠.”

공연을 자주 안 하는 대신 음악적 에너지는 주로 곡을 쓰는 데 쏟았다. 정규 6집이 나온 지도 거의 10년이 지났다. “만들어 놓은 곡이 정말 많아요. 동료·선후배들의 곡도 받아 놓은 게 참 많은데…. 7집에선 스펙트럼을 좀 넓히려고요.”

이렇게 쌓여 있는 곡 가운데 상당수가 제주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나중에 이 곡들 중 10%를 추리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만들려고요.”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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