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 불굴의 정치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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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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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우리가…: 인빅터스’
럭비월드컵 통한 인종적 화합 그려
이스트우드 감독 끝없는 진화 눈길

“들려? 저건 6만 관중의 함성이 아냐. 4300만 국민이 외치는 소리야!”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의
클라이맥스. 주장 피나르(가운데·맷 데이먼)는 동료들에게 그들이 짊어진 나라의 ‘운명’을 확인시킨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들려? 저건 6만 관중의 함성이 아냐. 4300만 국민이 외치는 소리야!”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의 클라이맥스. 주장 피나르(가운데·맷 데이먼)는 동료들에게 그들이 짊어진 나라의 ‘운명’을 확인시킨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4일 개봉하는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전체 관람가)는 스포츠를 앞세운 ‘착한 선동 영화’다.
199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자국에서 개최한 럭비월드컵을 통해 인종 간 화합의 계기를 마련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
힘겨운 승리와 그로 인한 감동은 시작부터 예측 가능하다.》

그런데 이 선동, 뻔하다고 외면하기보다 감화를 받고 싶어진다. 올해 80세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모건 프리먼과 맷 데이먼의 믿음직스러운 이미지를 이용해 부추기는 것은 ‘관용의 정치’다. 배우들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진심이 묵직하고 따뜻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백인의 탄압에 저항해 27년간 투옥됐다가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모건 프리먼)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흑백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백인 스포츠’인 럭비를 지원하는 승부수를 던진다. ‘인종차별의 상징인 럭비대표팀을 없애자’는 여론을 달래고, 스스로 팀의 정신적 지도자로 나서 월드컵 우승에 도전한 것이다.

이스트우드 감독
이스트우드 감독
파격적 변화에는 반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총구를 겨눴던 두 인종을 스포츠로 결속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상은 곧 반발과 냉소에 부닥친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속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선의(善意)를 찾아내 파고드는’ 만델라의 전략은 최약체로 평가됐던 남아공 팀의 기적 같은 선전을 이끌어 낸다. 원작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기자인 존 칼린이 1989년부터 6년 동안 남아공 지국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쓴 책이다. ‘인빅터스(Invictus)’는 ‘불굴(不屈)’을 뜻하는 라틴어.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가 1875년 쓴 시의 제목이다.

“온 세상이 캄캄한 무덤처럼 나를 짓누르는 밤. 나는 어떤 신에게든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내게 굴하지 않는 영혼을 준 것에 대해서.…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

만델라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애송하던 이 시를 종이에 적어 럭비대표팀 주장인 프랑수아 피나르(맷 데이먼)에게 건넨다. 피나르는 대회를 앞두고 만델라가 수감됐던 감옥을 찾아가 시 구절을 곱씹는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만델라가 실제로 27년을 갇혀 지낸 로벤 섬 교도소에서 이 장면을 촬영했다. 짐승우리처럼 좁은 독방 한가운데 서서 양팔을 벌려 보는 데이먼의 표정에는 진심으로 놀란 빛이 역력하다. 프리먼과 데이먼은 7일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 주·조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영화에 출연한 남아공 럭비 선수들은 경기 장면에서 정말 ‘죽어라’ 부딪치고 넘어지며 그들에게 1995년의 기적이 어떤 의미였는지 보여준다. 럭비 규칙을 모르는 관객도 가슴이 울컥 뜨거워지는 것을 참기 어렵다. 원작에서 만델라의 후원자인 투투 대주교는 “이 세상의 좋은 일이 정말 좋은 까닭은 그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곧 이스트우드 감독의 메시지다. 많은 한국 관객은 순간순간 2002년 월드컵의 경기 장면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이미 데이먼과 함께 서른세 번째 장편 연출작 ‘히어애프터’ 촬영에 착수한 이스트우드 감독은 멈출 줄 모르는 노년기의 진화를 다시 입증했다. 젊은 세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바쁘게 남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인빅터스’는 모쪼록 그 이야기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이어지길 바라게 만든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dongA.com에 동영상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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