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나요, 만신창이 가족의 불협화음이…영화 ‘도쿄 소나타’

  • 입력 2009년 3월 17일 02시 57분


19일 개봉하는 영화 ‘도쿄 소나타’는 가장의 실직으로 벌어진 미세한 틈이 한 가정의 붕괴에 이르는 과정을 치밀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대기업 과장이던 아버지 류헤이(가가와 데루유키)는 어느 날 해고 통보를 받는다. 이런 처지에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작은아들 겐지(이노와키 가이)가 마뜩찮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갑작스럽다’며 아들의 요구를 내치는 모습을 본 아내 메구미(고이즈미 교코)는 알량한 권위를 내세우는 남편에게 이골이 난다. 메구미는 얼마 전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는 남편을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도플갱어’ ‘절규’ 등 공포영화를 만들었던 솜씨를 발휘해 평범한 가족의 무너지는 일상을 차분하고도 섬뜩하게 그려냈다. 무너지는 가장과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자녀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은 한국의 가족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무너지기 직전의 가족은 두 가지 사건을 겪으며 폭발한다. 하나는 대낮 엄마만 있던 집에 어설픈 도둑(야쿠쇼 고지)이 든 것. 인질이 된 엄마는 오히려 도둑과 함께 훔친 차를 타고 바닷가로 가출한다. 또 다른 한편, 할인점의 청소부가 된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돈 봉투를 주운 뒤 무작정 도망친다.

만신창이가 된 류헤이 가족의 다음 날 아침. 하룻밤을 보낸 도둑이 자살하자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고, 도망치다 길거리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남편은 온몸에 낙엽을 붙인 채 집으로 향한다. 무임승차로 경찰서에 갔다 온 막내아들과 미군에 입대해 전쟁터를 떠돌던 큰아들도 역시 갈 곳은 집뿐이다.

그렇게 상처 입은 육신을 끌고 다시 한자리에 모인 네 사람. 이유를 묻지 않고 말없이 식탁에 마주 앉아 아침을 먹는 장면을 통해 감독은 가족이라는 이름이 짊어져야 할 절망과 희망의 양면을 보여준다. 12세 이상 관람가.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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