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같은 돈과 바꾼 희망…곗돈 붓는 한국사람은 다 안다 ‘걸스카우트’

  • 입력 2008년 6월 6일 08시 01분


미국에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섹스 앤 더 시티’, 재미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쿵푸 팬더’도 개봉한 6월 첫 주말. 하지만 추천작은 ‘걸스카우트’(감독 김상만·제작 보경사)로 정했다.

‘우리 것이 좋다’는 맹목적인 애국심에서, 한국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걸스카우트’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얼핏 보면 그저 슬쩍 웃겨주고 지나가는 작품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기대했던 웃음보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희망을 되찾는 돈 떼인 여인들의 눈물에서 이 영화의 진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속병이 날 정도로 원망스러운 도망간 계주를 잡기까지 가상의 마을 봉촌동 여인들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줬던 시원함을 느끼게 해준다. 굳이 그 시원함을 표현하라면 해방감이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느낌. 위아래로 쫙 빼입은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욕 여인들에게는 없는 봉촌동 아낙들의 신선한 청량감이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과장도 포장도 없이 신파를 꾹꾹 눌러댄 절제다. ‘걸스카우트’ 주인공들의 딱한 사정들은 절로 눈물이 난다. 모두 가난하고 하는 일마다 손해를 본다. 학원 운전기사, 봉제인형을 만들고 마트에서 일을 한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홀로 키우는데 한 아이는 아파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 할머니는 다리가 퉁퉁 부어가며 일을 하지만 아들은 돈 더 내놓으라고 손찌검까지 한다. 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바로 곗돈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큰 돈이 안 될 수도 있는 돈 몇 백이지만 아이 수술도 시킬 수 있고 꿈에 그리던 도시락 가계 밑천도 된다. 그런데 그 희망이 사라졌다. 그들은 의기투합 계주를 찾아 나서지만 사실 희망이 사라진 현실에서 버틸 자신도 없었다. 슬프지만 눈물 흘릴 틈도 없다. 집에서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씩씩해야 한다.

계주를 쫓아 나선 봉고차 안에서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까 좋다”고 말하고 도시락도 까먹고 삼겹살도 구워먹다 춤까지 한번 춘다. 최악의 순간이지만 그녀들은 그 곳에서 자유를 느낀다. 생각보다 손쉽게 계주를 잡지만 이 여자 오히려 자신의 도피를 도우면 곗돈은 물론 거액을 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더 만만치 않다. 돈 앞에서 다툼도 일고 남자들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한다. 그래도 시원한 자유를 한번 맛본 그녀들은 욕심내지 않고 크게 한번 울고는 서로를 이해한다. 사라진 곗돈은 가난과 삶에 찌든 그녀들을 몸과 맘을 힘들게 했지만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 깨닫게 해준 고마운 돈이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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