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볼까 무서운 대낮 케이블TV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케이블 TV에서 낮 시간대 초등학생이 보기에 부적절한 선정적 프로그램이 이어지고 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오후에 귀가한 어린이들이 ‘나 홀로 집’에서 무방비 상태로 TV 앞에 앉아 있는 상황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최근 대구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의 가해 학생들은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인터넷과 케이블 TV에서 방송되는 선정적인 장면을 흉내 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온미디어 계열 채널 스토리온은 1일 오후 3시 50분 ‘박철 쇼’를 방송했다. 30, 40대를 시청자 층으로 부부 성생활 등 성문제를 주제로 삼는 이 토크쇼는 듣기 거북한 표현이 여과 없이 나올 때가 많다. 이날 방송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것, 남편과 같이 노래방 가는 것”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남자들은 호모” 등 초등학생이 들어서는 안 될 표현들이 나왔다.

리빙TV는 ‘섹시 몰래카메라 허니 트랩’(15세 이상 시청가)을 2일 낮 12시 반에 방송했다. 리빙TV 홈페이지에 따르면 “잘 빠지고 섹시한 비키니 차림의 소녀 세 명이 휴가를 함께 보낼 남자들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줄거리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민망하다.

위성채널인 스카이HD는 어린이날인 5일 오후 5시 미국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방송했다. 이 드라마는 주부 4명의 일탈이나 불륜, 살인 사건의 비밀을 추적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일부 채널은 청소년보호시간대(평일 오후 1∼10시, 공휴일과 방학엔 오전 10시∼오후 10시) 19세 이상 시청가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을 어기기도 했다.

CJ미디어 계열 케이블 채널 tvN은 ‘나는 형사다’(19세 이상)를 2일 오후 3시와 3일 오후 5시, 4일 오후 2시에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은 살인 성폭력 방화 등 범죄 현장과 범인 검거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곳곳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나온다.

이 채널은 19세 이상 시청가 등급인 드라마 ‘쩐의 전쟁’을 토요일인 3일 낮 12시에 내보냈다. 3일은 연휴기간이어서 ‘재량 방학’으로 정한 초등학교가 많았다. 사채업, 납치, 성폭행 등을 소재로 한 이날 ‘인간의 돈’ 편에서는 안마업소에서 엉덩이만 수건으로 가린 채 누운 남자를 여성 안마사가 주무르는 선정적 장면이 나왔다.

유료 채널인 캐치온 플러스는 2일 오후 3시 드라마 ‘캘리포니케이션’을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캘리포니아’와 ‘간통(포니케이션)’을 합쳐서 지었다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선정적 장면도 담겨 있다. 유료채널의 청소년보호시간대는 오후 6시 이후이긴 하지만 오후 3시 무렵이면 초등학생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같은 케이블 TV의 낮 시간대 선정적 프로그램에 대해 보험회사원 이광희(41) 씨는 “맞벌이 부부여서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를 집에 혼자 둘 때가 있다”며 “혼자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는지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프로그램 등급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며 “낮 시간대 방영되는 프로그램의 심의 수준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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