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 찰턴 헤스턴, 천국의 무대로

  • 입력 2008년 4월 7일 02시 51분


알츠하이머 투병중 사망

‘벤허’ 찰턴 헤스턴(사진)이 5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4세. 헤스턴은 알츠하이머병으로 6년간 투병해 왔다.

1924년 미국 일리노이 주 에번스턴에서 태어난 그는 학창 시절부터 연극 무대와 아마추어 무성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쌓았다. 1950년 영화 ‘다크 시티’로 할리우드에서의 영화 활동을 시작했으며, 1952년 세실 드밀 감독의 영화 ‘지상 최대의 쇼’에 출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헤스턴이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것은 1959년 영화 ‘벤허’를 통해서다. 그는 앞서 ‘십계’(1956년)에서 모세 역할을 맡아 영화계와 관객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헤스턴이 ‘벤허’의 주인공이 된 데는 운이 따랐다. 쟁쟁한 배우들이 물망에 올랐지만 버트 랭커스터는 “영화의 폭력적 도덕성이 싫다”며, 폴 뉴먼은 “튜닉을 소화할 만큼 다리가 길지 않다”면서 거절했다.

유대인 귀족에서 노예 신분으로 추락한 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벤허의 극적인 삶을 장대하게 그린 영화 ‘벤허’는 전차 경주 부분이 명장면으로 꼽힌다. ‘벤허’는 그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11개 부문을 수상해 역대 최대 수상작이 됐으며, 헤스턴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88cm의 키, 윤곽이 뚜렷한 턱과 넓은 어깨 등 헤스턴의 남성적인 외모는 이 영화에서 빛났다. 스스로도 “나는 다른 세기에 속한 얼굴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할리우드에서 역사를 다룬 대형 영화 바람이 불면서 ‘엘시드’ ‘고뇌와 환희’ 등 여러 시대물의 주인공을 도맡았다. 울림이 큰 목소리로도 팬들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추기경과 카우보이, 임금과 쿼터백, 대통령과 화가, 경찰과 사기꾼을 연기했다”고 스스로 밝힐 만큼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SF영화의 고전 ‘혹성탈출’도 유명하다.

스크린 밖에서도 여러 단체의 리더를 맡아 미국배우조합 대표, 미국영화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으며 미국총기협회(NRA)장을 맡아 총기 소지의 권리를 주장했다. NRA 회장 시절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게 “우리는 당신에게 스물한 살 난 딸도, 우리의 총도 맡길 수 없다”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1980년대 인기 TV 드라마 ‘다이너스티’에도 출연해 인기를 모았으며, 1990년대 이후에도 ‘아마겟돈’ ‘애니 기븐 선데이’ 등 여러 영화에서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2002년 알츠하이머병 투병 사실을 밝히면서 그는 “나는 홍해를 나눌 수 있지만 팬 여러분과는 나뉠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임종 당시에는 64년을 해로한 모델 출신 아내 리디아가 곁을 지켰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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