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한국영화계 ‘오달수’가 없다

  • 입력 2007년 7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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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수건 짜는 충무로 사람들의 ‘겨울 같은 여름나기’

국내 영화계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인 메가박스가 외국 자본에 팔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18일. 충무로 영화계는 또 한 차례 술렁였다. 올해 한국영화 점유율이 47.3%로 떨어져 부분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간 데 이어 메인 투자자 중의 하나였던 오리온그룹마저 영화산업을 구조조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였다.

이제 충무로에선 26일 개봉하는 ‘화려한 휴가’(제작비 100억 원), 8월 말에 개봉하는 ‘디 워’(700억 원)의 흥행을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다. 차가운 한파가 몰아친 충무로는 ‘마른 수건 짜기’에 돌입했다. 2007년 여름, 영화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 ‘명품 조연’ 오달수, 작년 8편… 올해는 대학로행

연극배우 출신 스타 조연배우인 오달수는 지난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구타유발자들’, ‘음란서생’, ‘뚝방전설’, ‘그해 여름’과 ‘괴물’의 목소리 연기까지 합쳐 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반기 개봉된 ‘우아한 세계’ 이후 영화 출연 계획이 없다. 그 대신 대학로로 돌아가 9월에 무대에 오르는 연극 ‘코끼리와 나’ 연습에 한창이다.

지난해 ‘미녀는 괴로워’에서 성형외과 의사로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던 이한위를 비롯해 이문식, 유해진, 나문희 등 ‘스타급 조연’들은 5, 6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했다. 이들은 개런티가 1억여 원 선이지만 한 해에도 여러 편 출연할 수 있어 ‘특A급’ 주연배우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제작비 절감에 나선 영화사들은 ‘이름 있는 조연’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주연 빼곤 다 엑스트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들은 거품을 뺀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장과 군수’ ‘권순분여사 납치사건’ ‘트럭’ 등에서 주역을 맡은 유해진과 ‘성남 펭귄’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이문식이 그들이다.

○ 싸이더스FNH 김미희 대표 “물량 공세 대신 아이디어-연출력으로 승부”

싸이더스FNH는 다음 달 23일 순제작비 17억 원의 영화 ‘죽어도 해피엔딩’(예지원, 임원희 주연)을 개봉한다. 상업용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순제작비 30억 원, 마케팅비 20억 원으로 총 50억 원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거품을 확 뺀 영화다. 지난해 이 회사는 순제작비 9억 원을 들인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전국 관객 230만 명을 끌어 모아 화제가 됐다. 그 뒤를 이어 KM컬쳐의 ‘어젯밤에 생긴 일’(제작비 15억 원), SM픽쳐스의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8억 원) 등 고화질(HD) 카메라로 촬영한 10억∼20억 원짜리 영화들이 속속 기획되고 있다.

그러나 김미희 대표는 “저예산 영화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자칫 ‘저예산=질 낮은 영화’로 비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한 준비와 기획으로 만든 ‘웰메이드 영화’라고 소개한다. 김 대표는 “돈에 의한 물량 공세가 아니라 참신한 아이디어와 감독들의 연출력만으로 퀄리티를 높였던 7, 8년 전 영화계로 돌아가자는 반성”이라고 말했다.

○ ‘허리우드 현상소’ 이상우 차장 “필름 현상 물량 작년의 절반”

필름 현상과 영화 후반작업을 하는 ‘허리우드 현상소’ 이상우 차장은 지난해 ‘왕의 남자’ ‘괴물’을 개봉할 때는 전국 극장에 보낼 필름을 현상하느라 토 일요일도 없이 24시간 일해야 했다. 그는 “올해 한국영화 필름 현상은 지난해에 비해 절반이나 줄었다”며 “대박 나는 몇 작품보다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영화가 여러 편 나오는 것이 한국영화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 자꾸 늦어지는 개봉 탓에 각색 작가는 호황

불황을 맞은 충무로에서도 각광받는 사람은 있다. 영화 개봉이 늦어지다 보니 기존 시나리오를 손질하는 각색 작가들이 더 바빠졌다. 6월 출범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의 안흥찬 공동대표는 “지난해 110편이 제작됐지만 투자 환경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기획과 시나리오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부실한 작품을 양산한 것이 현재의 위기를 불러 온 가장 큰 이유”라며 “프로듀서의 기획력을 향상하고 제작 현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시스템과 자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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