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선수’가 된 서른여섯 청춘 김태우

  • 입력 2006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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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민 기자
안철민 기자
“김태우 씨는 대사나 행동은 물론이고 그 사이의 표정이나 침묵을 잘 표현해요. 그건 연출이나 말로 안 되는 건데. 감정의 사이사이를 채우는 배우랄까. 그런 능력은 롱테이크에서 큰 힘을 발휘하죠. 시나리오를 쓰고 가장 먼저 떠오른 배우예요.” (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 김영남 감독)

13일 개봉되는 ‘내 청춘에게 고함’은 세 명의 청춘이 그려내는 독립적인 이야기 세 편으로 구성돼 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스물한 살 대학생 혜나와 무모한 스물여섯 근우의 이야기에 이어지는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인호 역에 김태우가 나온다. 박사과정을 밟다 군대를 가는 바람에 나이 서른에 제대를 앞둔 막막한 이 청춘, 휴가를 나왔다가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채게 된다. 11일 그를 만나 김태우와 김인호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 나이로 서른여섯, 솔직히 청춘은 아닌데요?

“아니, 지금 저는 당연히 청춘이죠. 청춘이 뭔데요? 스물다섯까진가? 어릴 때는 자기가 어른인 줄 아는데 서른 되고 마흔 되도 친구 만나면 다 똑같아요. 청춘이란 건 사람들 마음속에 그냥 이미지로 존재하는 거예요. 뭔가 혈기 왕성하고 때론 혼란스럽고…. 그 단어로 인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거죠.”

―‘청춘 영화’ 하면 청춘의 방황과 좌절을 보여 준 뒤 그래도 그 속에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가 대부분이죠. 뭔가 다른 점이 있나요.

“과장이 없어요. 일상적이죠. 포장되지 않고. 등장인물도 친구 중에 그런 애 한 명쯤 있을 것 같은 모습들이고.”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인물의 심리를 묘사해내기 때문일까. 시사회를 보고 나오던 여성 관객 두 명은 “홍상수 영화 같다”고 소곤거렸다.)

―인간 김태우의 청춘은 어땠나요.

“중학교 때부터 배우 되고 싶어서 연극과에 갔고 졸업하자마자 방송국 공채 탤런트 되고. 탤런트 연수 끝나고 첫 영화가 1997년의 ‘접속’이에요. 혼란스러울 틈이 없었어요. 운이 좋았다고요? 대학 땐 연극에 미쳐서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혼자 연습했고 연수 시절엔 매일 2시간 전에 나왔어요. 능력보다 욕심이 많은 편이죠. 아, 그리고 그 때만 청춘이 아니고 지금도 청춘이래도요.”(그는 일관성 있는 모범생 타입이다.)

―보통 감정이 격하게 분출되는 연기를 해야 ‘잘한다’는 소리를 듣잖아요. 근데 ‘힘 빠진’ 연기가 잘 어울려요. 이번 영화에서도 내내 무기력해 보이죠.

“그런 연기보고 ‘상 못 타는 연기’라고 해요. 근데 생각해 보세요. ‘술 취한 모습’하면 혀 꼬부라지고 다리 비틀비틀하며 과장된 몸짓을 하는데 대개 술 취하면 술 깨려고 노력하잖아요.”

―소심한 인호가 빌려간 돈을 3년 동안 갚지 않는 얄미운 친구에게 “내가 널 지켜보고 있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다 웃었어요.

“감독님은 편하게 하라고 하셨지만 제가 임팩트를 줬어요. 앞뒤로 계속 소심하게 나오니까 그 부분에 좀 질러준 거죠. 그게 결과적으로는 인호의 소심함을 더 강조하는 결과를 냈으니 의외의 성공이에요.”

―본인도 소심한 면이 있나요.

“사실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워요. 예전에는 연습하면서 울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 노력하니까 길이 보이더라고요. 콤플렉스가 많은 게 단점이었지만 지금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만점짜리가 없어요.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게 매력이죠.”

―인호가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채고도 별 대응을 안 하는 게 이해가 안돼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 같으면 ‘뭐가 문제냐’ 말을 하고 좋은 쪽으로 해결하거나 아님 헤어지죠.”(영화 속에서 방황하던 인호는 우연히 만난 여자와 밤을 보내고 아내에게 고백하지만 아내는 냉정하게 말한다. “다른 남자가 생겼어. 알고 있겠지만.”)

―‘접속’이나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흥행 영화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같은 작가주의적 영화를 넘나든다는 평가가 많아요.

“시나리오가 좋은데 다른 조건이 너무 나쁘면 사실 출연을 안 할 수도 있지만 시나리오가 별론데 다른 조건이 좋다고 출연하지는 않아요. 잘 읽히는 거, 읽고 나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걸 선택하죠. 스토리가 분명한 영화도 좋지만 이번 영화처럼 보면서 지금 나의 모습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 영화도 매력 있어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저예산 영화든 블록버스터든 단편이든 안 가려요. 수영이 취미일 땐 자유형만 해도 되지만 수영 선수라면 배영도 할 줄 알아야죠. 전 ‘선수’니까 이것저것 하는 거예요.”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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