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창섭/방송委 의사결정방식 바꿔야

  • 입력 2003년 4월 29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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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방송은 방송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제반 영역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한국인이 생각과 말과 행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의제를 설정해 주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주축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반수 찬성’ 집권당 전횡 우려 ▼

이 같은 점에서 우리나라 방송의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방송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한국 방송이 나아갈 좌표를 명확히 제시해 주는 것이다. 한국 방송은 왜 존재하고,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한 철학과 안목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우리 방송인들이 그러한 바탕그림 위에서 스스로 색칠을 해 나갈 때 비로소 바람직한 방송의 자화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방송인들의 위상과 현주소가 투명하게 나타날 때에만 바람직한 방송 편성 이념과 제작의 틀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를 뒷받침해 줄 적절한 방송 관련 법규의 제정 개정을 포함한 투명한 행정 절차도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특히 한국 방송의 발전을 위해 방송위원회에 요구되는 것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독립성은 방송이 여야 어느 정파의 당리당략이나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 공평하게 운영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전문성은 뉴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방송과 통신이 갈수록 융합돼 가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다.

최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한 달 가까이 끌어 온 방송법 개정 논란은 일단 수습됐으나 방송위의 독립성에 의문부호를 남겨 놓는 결과를 초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방송위원회 전체 위원 9명 중 대통령 추천 3명과 민주당 추천 2명 등 실질적으로는 집권 여당 몫이 5명, 한나라당 추천 3명과 자민련 추천 1명으로 야당 몫이 4명이다.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의 비율도 5 대 4로 기형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인적 구성 하에서는 ‘방송의 독립성’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방송위의 결정이 현행대로 과반수로 이뤄진다면 집권당 전횡의 위험성을 초래할 수 있어 9명 위원제의 실효성이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방송위의 결정은 적어도 3분의 2(6명) 이상 찬성 내지는 4분의 3(반올림해서 7명) 이상의 찬성에 의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방송위를 이렇게 운영하지 않는 한 여야 합의의 정신을 살려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함께 앞으로 방송위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 개정 등에 필요한 법조계 인사를 위시해 디지털 분야의 기술전문가들이 영역별로 포진해 있어야 한다. 특히 뉴미디어 관련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식과 현실 감각은 방송 통신의 융합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질이다. 이런 관점에서 수용자 중심의 방송 발전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방송위원으로 선정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여야를 초월해 전문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인사 메커니즘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여기에 지방 인사와 여성을 배려해야 할 과제도 아울러 제기되고 있다. 제한된 위원으로 광범위한 관련 전문영역들을 다 충족시킬 수 없다면 전문위원들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한편 방송위는 방송 분야의 행정영역에서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문화관광부와의 관계 정립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간혹 정책의 획을 긋는 과정에서 정부와 방송위의 마찰과 갈등이 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위는 정책수립이라는 실질적 차원에서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 법-기술 전문가도 위원 포함돼야 ▼

이 밖에 방송위는 방송-통신 융합시대에 대비한 관련 법제 마련도 시급히 해 나가야 하고, 방송의 어제와 오늘을 총점검해 보는 분석 작업도 병행해 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울러 방송위는 공익자금 관리나 프로그램 심의 등 위탁이 필요한 영역을 포함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월권행위’가 무엇인지에 관한 식별작업을 체계적으로 전개해 위원회로서의 위상과 권위를 재확립해야 할 것이다.

최창섭 서강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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