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피아니스트, 폴란스키版 '쉰들러 리스트'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23분


사진제공 카날플러스

사진제공 카날플러스

《고통스런 기억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10년 전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연출 제의를 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당시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라고 거절 이유를 밝혔다.그런 점에서 영화 ‘피아니스트’는 폴란스키 감독의 자기 치유적 작품이다. 그는 유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삶을 통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년시절의 잔혹한 기억을 끄집어 냈고 이 작품은 그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겨줬다.》

◐감독 로만 폴란스키

1933년 폴란드 태생인 그는 2차 세계 대전을 온 몸으로 체험했다. 여덟살때 부모와 함께 수용소에 억류됐고 그곳에서 어머니는 학살됐다.

폴란스키는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영화 준비 과정에서 오래 전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요소를 마주칠 때마다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악마의 씨’ ‘차이나타운’ ‘비터문’ 등 성과 폭력의 문제를 파격적 영상에 담아왔으나 ‘피아니스트’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온건한 작품으로 꼽힌다.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이 영화는 폴란드의 국보급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자서전을 토대로 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스필만 가족은 바르샤바의 유태인 수용소에 감금되고 이후 ‘가스실 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스필만은 자신을 알아본 몇몇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극적으로 탈출하고 이 때부터 생존을 위한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6년간의 도피생활이 한계상황에 달할 무렵 스필만은 한 독일인 장교의 도움으로 살아남고 종전과 함께 피아니스트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차가운 절제, 감동의 극대화

이 작품이 세계대전을 다룬 기존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점은 학살 현장을 보는 감독의 담담한 시선. 폴란스키 감독은 주인공을 철저히 생존자로만 부각시켜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

독일군이 노동현장에서 이탈한 유대인을 사살하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마지막 한 명을 처형하려는 순간 총알이 떨어진다. 할리우드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그의 ‘우연적 구원’을 기대하지만 감독은 독일군은 천천히 탄창을 갈아낀 뒤 안전 장치를 풀고 정확히 머리를 향해 총을 쏜다. 감독은 “원작 자체가 절제의 힘을 갖고 있어 영화에서도 그 힘을 간직했다”고 말했다.

◐또 한편의 홀로코스트

해외 평단은 ‘피아니스트’를 ‘지극히 진부한 영화’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종전 57년이 지난 지금도 홀로코스트 영화가 계속되는 것은 2차 세계대전이 서구 사람들의 뇌리 속에 여전히 깊은 상흔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홀로코스트 영화는 살아남은 자가 느끼는 죄의식의 해방구일 뿐 아니라 종전 이후 피해자와 가해자가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애드리언 브로디의 눈빛연기

스필만 역을 맡은 애드리언 브로디는 이번 영화를 통해 미국 영화계의 재목으로 낙점받았다. 영화 속에서 그는 처연한 눈빛 하나만으로 스필만의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을 소화했다. 그는 이 영화를 위해 13kg를 감량하고 피아노를 배우기도 했다.

3500만달러(약 420억원)의 제작비와 1300명의 제작진이 동원된 이 영화는 그 스케일에 압도된다. 전쟁이 끝난 뒤 폐허로 변신한 바르샤바 시내의 모습은 연출된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만큼 사실적이다. 감독은 수천명의 보조연기자까지도 일일이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통해 캐스팅할만큼 영화의 완성도에 집착을 보였다. 12세 이상 관람가. 2003년 1월 1일 개봉.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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