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김윤진 “미흔, 그 여자 많이 아플거예요”

  • 입력 2002년 11월 6일 18시 48분


‘밀애’의 시사회가 열리던 날, 영화 상영에 앞서 무대인사를 나온 김윤진은 사연많은 여자의 목소리로 “이 영화, 해피 엔딩이예요”하고 말했다.

김윤진이 연기한 ‘밀애’의 전업주부 미흔은 시체처럼 살던 어느 날 불붙은 위험한 사랑에 온 몸을 던진 뒤, 가정도 깨지고 연인도 잃고 일용직을 하며 혼자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도 ‘해피 엔딩’이라고?

“그 여자, 밤마다 울기도 할테고 많이 아플 거예요. 하지만 ‘나, 이렇게 살아서 고통을 느낀다’는 복잡한 감정이 그 여자를 살게 하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인형의 집’의 노라가 아무계획 없이 집을 나가는 게 희망으로 보이는 역설처럼 말이죠.”

출연 제의를 받기 1년 전 전경린의 원작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읽었을 때, 김윤진은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영화로 만들면 참 좋겠는데 이렇게 칙칙한 여자를 도대체 누가 연기하고 싶겠어”하면서. 그런데 느닷없이 그 ‘칙칙한 여자’로 살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출연 제의를 수락하기까지 8개월이 걸렸다.

“노출에 대한 부담이 49%라면 내가 과연 미흔으로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갈등이 51%였어요. 연기자이면서 왜 이렇게 고민하나 스스로 속상할 정도로…. 결국 그 캐릭터에 대한 매력때문에 고개를 돌리기 어려웠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남녀의 반응이 다르듯, 김윤진의 연기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쉬리’의 여전사 이미지를 벗고 가장 나은 연기를 보여줬다”(영화평론가 심영섭)는 칭찬이 있는가 하면 “너무 몸을 사렸다”(영화평론가 전찬일)는 지적도 있다.

“반응이 다양한 건 좋은 일이죠. 단, 미흔을 연기하면서 몸을 사린 적은 없어요. 변영주 감독이 ‘가슴노출 장면에선 대역을 쓰겠다’고 했는데 제가 거절한 적도 있습니다. 여성의 정서를 섬세하게 보여주려는 영화의 톤과 맞지 않아 최종 편집에서 빠졌을 뿐이죠.”

그녀는 ‘쉬리’의 ‘여전사’ 꼬리표가 싫어 여전사 이미지를 앞세운 CF를 거절하며 이미지를 바꾸려 안달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내 그릇과 색깔이 있는데 일부러 바꾸려고 애쓰고 싶지 않아” 편안한 심정이라고 한다.

순간에 모든 것을 던지는 프로 정신이 투철한 배우 설경구를 존경한다는 그는, 다음 번엔 ‘디 아더스’같은 서스펜스 스릴러에서 “놀라서 도망가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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