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충무로의 '꽃'이 바뀐다…화끈한 액션 과감하게 변신

  • 입력 2002년 4월 29일 17시 19분


'조폭마누라'에서 조폭 보스로 출연한 신은경
'조폭마누라'에서 조폭 보스로 출연한 신은경
《영화속 여자들이 바뀌고 있다. 이전에 꽃으로만 비쳤던 그들이 이제는 남자를 누르는 주먹으로, 의리 있는 밤무대 쇼단원으로, 결혼과 연애 사이를 오가는 ‘뱃심좋은’ 여자 등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있다. 영화사 ‘씨네월드’의 정승혜 이사가 최근 영화속 여자의 다양한 모습과 그 함의를 분석했다.》

▼꽃이 아닌 뿌리가 되는 여자들!▼

거칠고 포악한 남자들 틈에서 돈가방을 둘러싼 전쟁에 몸을 던진 두 여자의 이야기 ‘피도 눈물도 없이’, 우연히 주운 총 한자루로 전국을 헤집고 다니는 어린 네 여자의 전국일주 해프닝 ‘아프리카’, 4명의 여고 동창생이 20대를 맞아 겪는 성장 드라마 ‘고양이를 부탁해’, 나이트 클럽을 사수하려는 여자들의 코믹 생쇼 ‘울랄라 씨스터즈’ 등의 포스터에선 남자는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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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대대적인 캐릭터 변신에 들어간 여자가 이끌어간다는 것. 남자의 어깨에 기댄 채 멜로 영화를 이끌었던 여자들이 최근 들어 액션 드라마 로드무비 등 장르를 넘나들며 남자의 영역을 삼키고 있다.

▼한 액션 하는 여자들▼

크랭크인 전 액션 스쿨에서 연기 수업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현장에서 사고로 몇 바늘씩을 꿰매고도 끝까지 촬영에 임하는 그녀들. 총을 쏘는 남자의 뒤에서 보호받던 액션 영화에서 여자는 언제나 늦게 뛰고 넘어지는 수동적 캐릭터였다.

그러나 강한 여자로 스타트를 끊은 ‘쉬리’의 여전사는 여성을 통한 에너지의 폭발이라는 ‘통쾌 상쾌’의 모델이 되고 있다. 팬들의 대리만족은 물론이었다.

조폭의 마누라가 아닌 조폭 당사자로 나온 신은경. 그녀는 ‘조폭 마누라’에서 미용실 가위가 아닌 전설적 주먹으로 가위 기술을 발휘해 전국 관객 500만명이라는 흥행을 기록하며 여성 관객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지 않았던가. ‘피도 눈물도 없이’의 주연 여배우 전도연과 이혜영은 마초 세계에서 살아 남은 최후의 2인이 되어 돈가방을 차지하고 행운의 브이를 그리기도 했다.

▼눈물을 과감히 던져라▼

자아가 분명하고 눈물을 아낄 줄 아는 여자들은 더 이상 남자 때문에 갈등하지 않는다. 무엇이 될까,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하는 스무살 초반의 세 여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관을 찾아내려고 세상에 다가선다. 그래서 ‘고양이를 부탁해’는 내려가는 간판을 일으켜 세우는 힘을 발휘했고 오랫동안 사랑을 듬뿍 받은, 작지만 큰 영화로 남을 수 있었다.

대학생과 사랑에 빠진 호스티스가 몸 주고 마음 다친 이야기가 1980년대의 단골 여성영화였다면 ‘울랄라 씨스터즈’는 작품의 완성도나 흥행의 잣대를 떠나 한 걸음 앞선 영화다.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공간을 지키겠다는 정신력으로 무장된 네 여자는 ‘풀몬티’라는 잔잔한 남자들의 쑥스러운 ‘누드 반란’보다 힘있는 코믹 댄스 그룹을 만들어낸다. 영화 팬의 심리적인 동의를 구할지는 미지수이나 기획의 차별성만으로 그녀들은 앞서 가는 캐릭터다.

여자들의 당당한 목소리가 있는 영화들은 관객들과 빠르게 접속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기획과 캐스팅의 대안으로는 긍정적이나 여자들만 뭉쳐 영화를 이끌고 나가는데 다소 힘에 부친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영화사 100년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여자들의 일대변신이 아직 거대한 흥행 기록을 세우며 상업적 성과를 보장받지는 않았으나 영화 속의 여자들은 계속해서 변신할 듯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여자 주인공이 결혼과 연애를 양손에 쥐고 안들킬 것이라고 주장하는데도 비난의 돌을 던지는 사람이 없는 만큼 여성의 변신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꽃으로 존재해온 여배우의 자리가 뿌리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도 빠르게 단축될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정승혜(씨네월드 이사) amsaj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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