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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28일 17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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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0년 244만명(서울 관객 기준)을 기록한 ‘공동경비구역 JSA’로 흥행 감독이 됐지만 “늘상 아쉽다”고 말했다. 대중적인 영화를 만드느라 자신이 추구하던 영화의 색깔이 바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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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하고 건조한 스타일의 ‘하드 보일드’(Hard Boiled) 영화를 표방한 ‘복수는 나의 것’은 박찬욱이 자기 의지대로 마음껏 찍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복수극’은 기묘한 타협 속에 이뤄졌다. B급 영화의 코드와 이미 흥행의 ‘냄새’를 지울 수 없게 된 박찬욱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의 스타 파워가 결합된 것. 그런 면에서 순수 제작비 21억원이 들어간 이 작품의 ‘혈액형’은 ‘B형’이 아니라 ‘AB형’이 됐다.
이 작품은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끔찍한 복수의 비극을 다뤘다.
선천성 청각 장애를 지닌 류(신하균)는 유일한 가족인 누나와 살고 있다. 그의 누나는 신부전증을 앓고 있어 신장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살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는다.
류와 혁명적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의 연인 영미(배두나)는 장기밀매단의 사기에 걸려 누나의 수술비를 잃게 되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를 유괴한다.
이들은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체 사장 동진(송강호)의 딸 유선을 납치하나 동생의 범죄를 알게 된 누나는 자살하고 유선은 사고로 익사한다.
영화의 후반부는 류의 장기밀매단과 동진의 류에 대한 복수극 등 연쇄적인 ‘피의 잔치’로 이어진다. 전기고문이 등장하고, 목 동맥을 찌르자 피가 분수처럼 솟고, 물 속에서 상대방의 인대를 끊어버린다.
표정없이 복수극에 몰두하는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그 어떤 한국 영화보다 강렬하고 잔혹하다. ‘친구’나 ‘피도 눈물도 없이’의 자극적인 장면이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다.
‘복수…’의 핏빛 화면이 무의미한 칼부림만으로 비쳐지지 않는 것은 극중 인물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보다 인간의 양면성과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주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류는 사건 이전에는 평범하고 선량한 노동자였고 영미는 좀 황당하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반면 피해자인 동진은 직원을 해고해 일가족이 집단자살하게 만드는 원인을 주기도 한다.
영화의 ‘복수극’은 유괴 사건의 모티브를 제공하면서 연쇄 복수극을 암시하는 영미의 존재로 인해 복잡해지는 듯하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영미의 조직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아무래도 엉뚱하다.
박 감독의 ‘복수극’은 흥행이 되어야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 해답은 관객이 이 낯선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18세 이상. 29일 개봉.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이 대사!
#영미가 류에게 아이를 유괴하자고 설득하는 장면.
영미:세상엔 ‘좋은 유괴’가 있고 ‘나쁜 유괴’가 있어. 좋은 유괴엔 부모의 협조가 필수적이지. 어리석게 경찰에 신고를 하니까 아이가 죽는 일이 생기는 거야.….
류:(자막)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해. 유괴만은 절대로 안돼.
#복수극에 나선 동진이 류를 결박해 살해하기 직전.
동진:(울먹이며) 왜 이렇게 사는 게 뜻대루 안 되니. 응? 너 착한 놈인거 알어.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맘 이해하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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