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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11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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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환갑이 넘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젊음으로 더욱 눈부셨던 20대 초반. 그는 브로드웨이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연기력을 연마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 바쳤다. 그 때 다져진 탄탄한 연기력이 그를 할리우드의 ‘명예의 전당’까지 인도하는 밑거름이 됐다.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주연을 맡은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자 충격을 못이기고 방송계 은퇴를 고려했고, 가수 도니 오스몬드 역시 뮤지컬에서 참패를 맛보고 깊은 절망의 나락에 빠진 적이 있었다.
▼거품인기 벼락스타들 종횡무진▼
미국에서 연예인이 사회 저명인사로 존경받을 수 있는 건, 그만큼 스타가 되는 길이 험난하고, 요구되는 자질 또한 까다롭기 때문이다. 얼굴 좀 잘 생겼다고, 노래 좀 할 줄 안다고, 대번에 스타가 되지는 않는다. 철저한 자기수련과 전문성, 그리고 거품 인기가 아닌 진짜 대중의 사랑을 얻어야 비로소 한 명의 스타가 탄생한다.
TV 속에서 보는 우리나라 연예계는 치열한 재능의 경연장이 아니라, 거대한 사교 친목 클럽처럼 보인다. 게다가 클럽의 멤버십을 정하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방송사와 매니저인 듯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출내기들이 그렇게 TV 화면을 종횡무진 누빌 수가 없다. 신인 가수가 돌풍처럼 가요순위 1위를 차지하고, 발음도 서툰 진행자가 여론의 따가운 지적에도 보란듯이 버티고 있다. 또 운동선수나 미인대회 우승자가 하루아침에 각종 프로의 진행을 덜컥 맡는다.
방송사나 기획사가 스타를 키우지 말란 법은 없다. 문제는 덜 무르익은 연예인에게 공중파 TV를 연습장으로 제공한다는 데 있다. 그렇게 내세운 연예인이 크는 과정까지 지켜봐야 하는 시청자는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다. 잘 크면 다행이지만, 중간에 헛발을 디디고, 사람을 아연실색케 하는 말이며 행동까지 봐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연예인들의 방송출연료도 결국 시청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간다. 연예인이 대중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연예인을 위로하는 꼴이다.
우리나라 TV에는 본격 연예프로그램에 비해 연예계 뒷이야기를 챙기는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많다. 연예인들은 토크쇼(진행도 대부분 연예인들이 맡는다)에 단골 게스트로 출연해 자신의 신변잡기를 늘어놓고, 방송사는 그들의 집안 구석까지 카메라를 들이대며 분만실이나 휴가지까지 동행하는 수고를 맡아 한다.
▼방송사, 연예인 재능 아껴줘야▼
이렇게 키워주고 챙겨주는 방송사에게 최근 연예인들이 반기를 들었다.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이 노예로 묘사된 것에 발끈해 출연 거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를 키우는 것도 대중이고, 버리는 것도 대중이어야 한다. 방송사들은 제발 연예인들이 스스로 커서 타고난 제 깜냥을 맘껏 발휘하도록, 그들의 재능을 멋대로 전용(轉用) 내지 유용(流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박성희<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shpark1@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