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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월 31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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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극본을 맡은 대학동기 장항준의 권유로 아르바이트 삼아 단역으로 출연키로 했다. 그런데 얼마 안있어 항준이로부터 삐삐가 왔다. 당초 남자 주연급이었던 최진영이 펑크를 내 대타로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김병욱 PD(<순풍산부인과>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연출가)에게서 연락이 오면 좋다고 덥썩 받아들이지 말라는 충고를 곁들였다. 연극을 핑계로 “시간이 날지 모르겠네요”라고 한번쯤 빼는 맛이 있어야 연출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며칠후 진짜 김 PD로부터 연락이 왔고 나는 항준이의 충고를 따랐다. 하지만 김 PD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나는 눈매가 날카로운 탓에 보통 첫 인상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많이 들은 탓에 마음속으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준이를 통해 김 PD가 목소리와 눈빛이 맘에 든다며 나를 기용하기로 결정했다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뒤에 김 PD에게 들은 얘기지만 내가 바쁘다고 튕길 때 연기가 너무 어설퍼서 입술 떨리는 것까지 다 보고 ‘거짓말은 못하는 친구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단다.
이 때의 인연이 김 PD의 다음 연출작인 SBS 시트콤 <미스 앤 미스터>로 이어졌고 이 두 작품이 영화 <조용한 가족>과 SBS 주말드라마 <은실이>, SBS 오락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의 ‘흑과 백’코너에 출연할 발판이 됐다.
대학시절 탤런트 시험 3차까지 갔다가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고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세상과 타협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의 그런 사탕발림에 혹하지 않는 김 PD 같은 분들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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