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Out] '늘 새로운 것'에서의 일탈

  • 입력 2000년 8월 8일 19시 25분


세상이 온통 빠르게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불안해 하고 남보다 늦는 것을 못견뎌한다. 오죽하면 근육질의 인기가수가 모래시계를 깨버리는 CF까지 나왔을까?

시대의 유행을 가장 먼저 흡수하고 따라가야 하는 방송 또한 이 속도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사람들은 쉴새없이 바뀌는 화면과 감각적 재미에 익숙하며 늘 새로운 것,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런 사고에서 벗어난 프로그램은 시청률 경쟁에서 낙오되기 일쑤고 프로그램에 최신 유행을 담지 못하는 제작진은 그 나태함과 '감' 없음을 지적 받기 마련이다.

<개그콘서트>도 그랬다. 첫째, 패러디 가능한 모든 장르를 패러디하고 또 뒤집어서 다음 상황 예측을 못하게 한다. 둘째, 내용을 최대한 압축하여 보는 사람이 재미있고 없고를 판단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다음 코너로 넘어간다. 이것이 <개그콘서트>의 '스피드' 전략이었고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데 가끔은 이러한 법칙에서 벗어난 프로그램들도 존재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가족오락관>이나 <전국 노래자랑>, <가요 무대> 같은 프로그램은 포맷의 큰 변화 없이도 오랜 시간 시청자들의 사랑 속에 장수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이들이 단순히 옛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거나, 혹은 과거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장수의 신비한 마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 프로그램들을 시청자들이 즐겨 찾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익숙함과 편안함에 있지 않을까? 거기에는 언제나 변함없을 것 같은 침착하고 너그러운 시선이 있고, 그 안에서 시청자들은 마치 오랜 시간 계속되어 온 긴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휴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매력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없는데서 나오는 해방감과 그 모든 것이 다시 익숙함으로 환원되어 시청자와의 교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데 있다.

사실 우리는 TV에서 휴식을 얻고자 하면서도 휴식보다는 자극을 찾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런 때의 방송은 마치 앙상하게 서있는 나무와 같다. 시청자가 느끼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이런 앙상함에 살을 붙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방송의 울림은 그 나이테를 하나씩 넓혀 가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장수 프로그램들의 저력이 아닐까?

빠르고 새롭고 자극적인 것들이 뒤엉켜 있는 도심의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장수 프로그램들은 마치 고향처럼 편안하고 넉넉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박중민 (KBS <개그콘서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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