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애니감독 페트로프 컴퓨터 대신 手작업, 오스카賞 타

  • 입력 2000년 3월 30일 19시 44분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의 승리.’

27일 발표된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부문상을 받은 러시아의 애니메이션 감독 알렉산드르 페트로프(사진)의 장인 정신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그래픽 제작이 일반화된 시대에 손으로 일일이 한 컷씩 그려낸 원시적인 제작 기법으로 오스카상을 따내는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

페트로프는 수도 모스크바에서 240㎞떨어진 야로슬라블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수상작품인 ‘노인과 바다’를 그려냈다. 세밀한 부분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유리 위에만 그림을 그리는 그는 10분 정도의 분량을 완성하기 위해 2년을 고생하기도 했다.

22분짜리 ‘노인과 바다’는 세계 최초로 웅장한 화면의 아이맥스(IMAX)영화관용으로 제작된 것. 그림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은 캐나다에서 했다. 그나마 부인과 아들이 맡아 마치 가내수공업을 연상시키는 작업 과정을 통해 작품을 완성했다.

89년과 97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페트로프는 3번째 도전에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일본과 미국의 상업적이고 산업화된 애니메이션이 세계를 휩쓰는 상황에서 그동안 페트로프의 작품은 꾸준히 주류에 도전하는 역할을 해왔다. ‘암소’와 ‘루살로치카’는 슬라브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 루살로치카는 고대 슬라브 전설에 나오는 인어와 비슷하게 생긴 숲과 물의 요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당선자는 29일 페트로프에게 축전을 보내 “러시아의 독특한 애니메이션 세계를 보여주었다”며 치하했다.

그러나 페트로프는 큰 상을 받으면서도 고국의 현실 때문에 가슴 아파했다. 아이맥스 상영관이 하나도 없는 러시아에서는 ‘노인과 바다’를 볼 수 없기 때문. 그는 고국팬들을 위해 일반 영화관 상연용으로 만들겠다고 밝히면서도 불법 복제부터 걱정했다. 페트로프는 일간 이즈베스티야와의 인터뷰에서 “일주일 후면 불법 복제로 악명 높은 모스크바의 가르부쉬카시장에서 해적판이 나돌 것”이라며 “해적판이 발견되면 전화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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