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룹에서 가요계'이즘'으로…델리스파이스-랜드라라

  • 입력 2000년 3월 7일 2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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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요계에 ‘이즘(철학)’이 있는가. 록그룹 ‘델리 스파이스’와 ‘랜드라라’는 감히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부른 노래의 가사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둘만의 대화에 머무는 ‘사랑타령’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지르기 때문이다.

4인조 그룹 ‘델리 스파이스’는 최근 세 번째 음반을 냈다. 음반 타이틀은 ‘슬프지만 진실…’로 머릿곡은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 아이는 날개가 너덜너덜해진 작은 새를 보고 아빠에게 뭐냐고 묻는다. 그러나 아빠는 이를 작은새라 하지 않고 한사코 고양이라고 둘러댄다. 이 노래는 추악한 현실을 덮으려는 기성 세대와 이를 맑은 눈으로 들추는 아이와의 대화다.

다른 수록곡 ‘워터 멜론’. “어쩔 수 없어/널 쏠 수 밖에/…시간이 다 됐어 도태될 낙오자들/수색대들의 한 손엔 총이 다른 한 손엔 칼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쏘아야 하는 현실을 은유했다. 현재 제도권 교실이 이보다 나을리 있을까.

‘델리 스파이스’는 97년 데뷔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출발해 그나마 한 줌의 추종자를 얻어낸 그룹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 3집은 유연했던 2집과 크게 달라졌다. 사운드가 거칠고 가사에는 분노가 배어 있다. ‘고양이와…’등 다섯 곡을 작사한 보컬 김민규는 “1집으로 성과를 얻자 우리들은 ‘주류’가 되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은 정말 거슬리는 게 많았다”며 “3집은 그에 대한 분노”라고 말했다. 그는 “너무나 공고한 주류의 벽에 대해서는 오기와 무력감을 동시에 느낀다”며 “그래도 할 때까지 하겠다”고 말했다.

4인조인 ‘랜드라라’는 최근 첫음반을 냈다. 90년대 중반 언더 펑크밴드에서 활동했던 젊은이들이 모인 그룹답게 세상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을 퍼붓고 있다.

그 화살은 엘리트주의, 복제인간, 매춘, 미디어의 조작 등을 겨냥하고 있다. 수록곡 ‘엘리트 뽕짝's’는 ‘남들이 시킨대로 엘리트 코스만 달려온 너가 바로 쓰레기야’라고 외치고 있고, ‘복제인간 Mr.Kim’은 복제 인간의 부조리를 노래했다.

‘랜드라라’는 그러나 가시돋친 가사에 비해 머릿곡이나 음반 전체의 사운드가 가벼운 게 흠. 머릿곡은 연인과의 이야기를 담은 ‘이젠 괜찮아’이고, 사운드는 가벼워 날이 선 가사를 받쳐주지 못한다.

국내 언더그라운드는 90년대 중반 일기 시작한 ‘길거리의 펑크’ 등이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면서 안팎으로 시들해졌다. 이런 배경 아래 출발한 ‘델리 스파이스’와 ‘랜드라라’의 성과가 주목된다.

<허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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