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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9월 6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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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까지 ‘드래곤볼’ ‘슬램덩크’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대작 만화들이 군림하던 일본 만화계에 새로운 붐을 일으킨 것은 ‘이나중 탁구부’‘멋지다 마사루’ ‘크레이지 군단’ 등의 개그만화. 비장미 넘치는 SF대작들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퇴행적인 인간 내면의 유치한 상상력과 악취미 심리를 드러내는 만화들이다.
예쁘고 환상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식상한 미국의 청소년들도 97년부터 M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비비스 앤 버트헤드’와 ‘다리아’에 열광한다.
★'악동' 캐릭터 등장
지난해 국내에서도 비디오로 소개된 ‘비비스 앤 버트헤드’의 주인공들은 괴상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장난을 일삼는 두 악동.
국내에서도 만화전문케이블 ‘투니버스’(채널 38)가 올해 5월부터 방영 중인 ‘다리아’에는 촌스런 옷차림에 검은 뿔테안경을 쓴 주인공 다리아가 속물적인 미국 문화를 통렬하게 꼬집는 ‘썰렁한’ 유머를 구사한다. 이 주인공들은 결코 예쁘지 않지만 이미 미국 신세대 청소년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컬트적 웃음' 폭발
다른 개그 만화의 주인공들도 하나같이 학교나 사회에서 ‘왕따’당하기 쉬운 인물들. 얼굴도 못생기고, 공부와 운동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못하면서도 자신만의 특이한 취향은 즐긴다.
‘멋지다 마사루’의 마사루는 ‘콧수염’을 무지무지하게 좋아하고, 이나중 탁구부의 마에노는 각종 변칙적인 기술로 상대 선수를 녹다운 시키고…. 주인공들은 주위의 시선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컬트적’ 취미를 끝까지 고수해 웃음을 자아낸다.
★기존 만화-권위 도전
국내 작가 조강연의 ‘진지한 사랑’의 여주인공은 머리가 신체의 절반이나 되는 ‘태양왕’. 그를 끔찍히도 사랑하는 잘 생긴 남자친구는 비오는 날 태양왕의 머리를 가려주기 위해 파라솔을 들고 다닐 정도로 헌신적인 사랑을 펼친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씨는 “90년대 후반의 개그만화는 기존의 모든 만화문법과 권위를 비틀어버리는 새로운 장르”라며 “세상 사람들의 어떤 시선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취향을 즐기는 주인공들의 행태에서 일상탈출의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