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3.98」 김종학PD 『모래시계 틀 안주 참패』

  • 입력 1998년 11월 3일 19시 09분


“국제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우동을 만들려고 했는데 짬뽕이 돼버렸고, 그렇다고 짬뽕 맛이 제대로 난 것도 아니고….”

3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백야 3.98’의 연출자 김종학PD의 말이다.

“결과론이지만 두배 가깝게 뛴 환율과 제작진의 한계 탓에 처음 기획할 당시의 액션물도 아니고 우리 역사와 정서를 바탕에 둔 멜로물도 아닌 타협적 작품이 됐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가 ‘모래시계’ 이후 3년만에 내놓은 야심작이었지만 시청률은 물론 완성도에서도 아쉬움을 남긴 채 3일 종영됐다. 30%대로 시작된 시청률은 10%대로 떨어졌고 PC통신에는 “‘모래시계’의 아류작” “공감할 수 없는 스토리에 어설픈 특수효과…돈이 아깝다” 등 독설이 쏟아졌다.

그는 “모든 것은 이전 작품의 성공에 안주한 PD의 책임”이라며 “우리 드라마의 제작수준에 비해 시청자의 눈이 높고 날카로웠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60분물 20부작에 이르는 드라마를 액션 위주로 끌고가는 것은 무리수였다는 자평이다. 따뜻한 피가 도는 인간의 이야기가 부족한 채 핵을 둘러싼 남북 갈등의 전개는 공감을 얻지 못했고 그나마 스토리의 짜임새가 부족해 시청자들과 겉돌았다. 또 음악 영상 캐스팅 등에서도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지 못하고 ‘모래시계’류의 자기복제에 안주한 것도 식상함을 불러일으켰다.

‘패장’임을 자처하는 그는 자신의 시행착오가 우리 드라마의 제작여건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했다.

“대작이 실패했다고 방송사측에서 매일 멜로물이나 코믹드라마와 같은 똑같은 ‘식단’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도 개방되는 등 영상의 글로벌시대가 코앞에 다가온 만큼 경쟁력 제고를 위해 다양한 시도와 투자가 지속돼야 합니다.”

김종학의 다음 작품은 경제드라마 ‘대망’. 원작이 있는 작품은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까닭에 ‘백야…’에서 만날 수 없었던 ‘모래시계’의 작가 송지나와 다시 손잡는다. ‘대망’이 ‘모래시계’의 성공을 따를지, ‘백야…’의 혹독한 참패를 되풀이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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