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영화」세미나]邦畵는 왜 술 빠지면 말안될까?

  • 입력 1998년 8월 28일 19시 36분


영화와 술? 엉뚱하지만 우리의 ‘세계적’인 술소비량,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화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강홀에서는 ‘한국영화속에 나타난 술의 이미지’를 주제로 한 이색 세미나가 열렸다.영화동호회 씨네클럽(02―866―8800)주최.

‘술 권하는 사회’이 면서도 정작 한국영화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왜?

“호색(好色)과 호주(好酒)를 덕목으로 정당화해온 대장부 문화권에서 알코올중독 자체를 정색해서 다루는 것은 호감살 일이 못된다. 술 권하는 사회를 테러하는 반체제적 시도일지도 모른다.”(유지나교수·동국대)

그러나 거의 모든 한국영화에 술은 항상 등장한다. 현실에서처럼 술은 음모 술수와 타락 혹은 타인과 교감하는 매개이기도 하고 고뇌의 현장, 때로는 계급을 나타내는 기호이기도 하다.

정성일씨(키노 편집장)에 따르면 우리 영화에서 술이 완전히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70년대의 영화들이다.

‘호스테스 영화’라는 이름이 붙은 기이한 장르속에서 술에 취한 주인공들의 자의식은 지향점을 잃고 비틀거렸다. 짓눌린 욕망의 분출구를 찾을 길이 없던 70년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가 ‘취권(醉拳)’이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요즘은 어떠한가. 이용관교수(중앙대)는 홍상수감독의 영화를 “지독한 술자리의 영화”라고 꼽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에 등장하는 술자리의 제스처와 이야기들은 ‘유치찬란’하지만 일상의 의식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인생의 진실 한자락을 펼쳐 보여준다. 때로는 취한 자가 진실을 발견한다는, 몇몇 주당(酒黨)들의 주장처럼.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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