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방송「舌禍」사건34돌]「앵무새사건」을 아십니까

입력 1998-06-03 08:11수정 2009-09-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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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받고 형무소로 돌아오면 ‘동아방송 만세’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34년이 흘러 옛 흔적만 남아 있지만 어제의 일처럼 기억이 생생합니다.”

방송 최초의 설화(舌禍) 사건이었던 동아방송(DBS)의 ‘앵무새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최창봉 고재언 이윤하 조동화 김영효 이종구씨 등 6명이 사건 발생 34주년(4일)을 앞두고 자신들이 갇혔던 구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앵무새 사건’이란 사회비판 칼럼이었던 ‘앵무새’프로의 풍자 내용을 빌미삼아 현직 방송인들을 구속한 사건. ‘귀로 듣는 동아일보’를 표방한 동아방송은 63년 4월25일 개국이래 박정희정권을 강도높게 비판해 왔는데 그 가운데 ‘앵무새’프로는 “체증이 뚫릴 정도로 시원하다”는 청취자의 박수를 받아왔다.

그러나 “부정(不正)사건 뒤에는 반드시 어떤 고관, 정당의 유력한 간부급 사람들의 줄이 닿아있으니…” “나라의 책임자는 산중의 한가함을 누리고…” 등등의 멘트가 정부의 비위를 건드려 급기야 개국 1년2개월만인 64년 6월4일 방송 관계자들이 구속되는 방송 초유의 탄압을 받은 것.

당시 방송부장이었던 최창봉 전MBC사장은 “우스꽝스러운 죄목은 4·19를 짓밟고 집권한 정부에 대한 동아방송의 비판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를 보여준다”면서 “‘앵무새 사건’은 방송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정부의 보복이었다”고 말했다.

김영효 당시 PD는 “밤 9시45분부터 단 5분간의 칼럼이었지만 영향력은 대단했다”고 밝혔다.

이들중 최창봉 조동화(당시 제작과장) 이윤하(편성과장) 등 세사람은 7월14일, 고재언(뉴스실장) 김영효(PD) 이종구(외신부장 겸 작가) 등 나머지 3명은 구속된지 64일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이들의 무죄가 확정된 것은 사건 발생 5년1개월 뒤인 69년 7월 검찰의 상고 포기로 이뤄졌다.

해마다 ‘앵무새 사건’을 기념해 자리를 함께 한다는 이들은 “80년 신군부가 방송통폐합으로 동아방송의 목소리를 빼앗은 것은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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