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AI 시대, 기업이 다시 ‘이야기꾼’을 찾는 이유는?

  • 동아일보

미국 기업, 스토리텔러 채용 급증
‘AI 슬롭’에 높아지는 피로감
‘진정성 프리미엄’ 살려 소통 강화
스토리로 매출-성장 이끌어야

고객관계관리(CRM) 글로벌 1위 기업 세일즈포스가 구축한 스트리밍 플랫폼 ‘세일즈포스 플러스’. 사진 출처 세일즈포스 홈페이지
고객관계관리(CRM) 글로벌 1위 기업 세일즈포스가 구축한 스트리밍 플랫폼 ‘세일즈포스 플러스’. 사진 출처 세일즈포스 홈페이지
인공지능(AI)이 화이트칼라 직업을 대체하기 시작한 지금, 오히려 채용이 늘고 있는 직무가 있다. 알고 보면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해 왔던 전문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다.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비즈니스 인맥 플랫폼 링크트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5년 11월 말 기준으로 1년간 미국 내 채용 공고에서 ‘스토리텔러’라는 직함이 포함된 비율은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했다. WSJ는 이에 대해 “기업들이 스토리텔러를 절실히 찾고 있다”고 평가했다. AI 시대, 기업은 왜 스토리텔러 채용에 나섰을까.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필요성을 분석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월 2호(435호) 아티클을 요약해 소개한다.

● AI가 만든 콘텐츠는 불호

마이크로소프트의 ‘88 에이커(88 Acres)’ 캠페인은 기업이 직접 만드는 온드 미디어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3년, 낡은 건물의 시설 관리자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한 편의 장편소설로 엮어 뉴스룸에 발행했다. 스마트 건물 관리 솔루션을 홍보하기 위한 시도였다. 제품의 스펙 대신 문제 해결의 서사를 보여준 이 콘텐츠는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전 세계 기업으로부터 “우리 건물도 이렇게 만들어 달라”는 문의가 폭주했다. 높은 조회수가 세일즈로 이어진다는 공식이 통하던 때였다.

이제는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며 클릭 몇 번만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목표한 조회수를 달성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소셜미디어 피드 등에 생성형 AI가 만든 기괴한 합성 이미지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무의미한 텍스트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AI가 만든 그럴싸한 저품질 콘텐츠, 즉 ‘AI 슬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미디어 인텔리전스 기업 멜트워터가 지난해 말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AI 슬롭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감정은 54%에 이르렀다. 2024년과 비교해 9배나 증가한 수치로, 효율성을 위해 AI를 무분별하게 도입한 기업들이 역풍을 맞고 있다.

AI가 만든 콘텐츠가 늘어날수록 ‘진짜 인간이 만든 이야기’의 가치는 증가한다. 이른바 ‘진정성 프리미엄’이 붙는 것이다. 소비자는 다소 투박하더라도 창작자의 고유한 관점, 감정, 감각이 담긴 콘텐츠에 반응한다. 즉, 과거 온드 미디어가 ‘광범위한 노출’에 집중했다면 이제 그 목적이 고객과의 ‘깊은 관계 형성’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 이야기 소재 발굴해 비즈니스로 연결

스토리텔러에게는 ‘스토리 마이닝’ 역량, 즉 기업 내부 저널리스트로서 이야깃거리를 발굴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단순히 조직의 새로운 소식을 찾아 알리는 수준을 넘어, 구성원조차 인식하지 못했거나 무심코 지나쳤던 ‘먹히는 이야기’를 취재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이러한 역량은 반복적인 훈련과 취재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또한 콘텐츠 포맷을 상황에 맞게 변주하는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보도 자료부터 숏폼 영상까지 다양한 콘텐츠 형식을 이해하고 각각의 맥락과 효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어떤 순간에는 기발한 밈의 형태로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돼야 하고, 다른 순간에는 진지한 선언문으로 고객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 전통 미디어의 규범성과 디지털 콘텐츠의 실험성 사이의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콘텐츠를 비즈니스 성과로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 스토리텔러의 최종 목표는 감동이나 화제성이 아니라 매출과 성장이다. 따라서 콘텐츠를 기획하는 단계부터 그 스토리가 고객의 구매 여정 중 어디를 공략하는지, 실제 계약이나 구매 전환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사업적 관점에서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오늘날 기업이 찾는 스토리텔러란 인문학적 감수성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면서도, 분석적 사고로 감동을 성과로 전환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전략가’라 할 수 있다.

● 인간적인 매력 살려야

‘인간적 매력’을 앞세워 시선을 끄는 글로벌 1위 어학앱 듀오링고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듀오링고 인스타그램 캡처
‘인간적 매력’을 앞세워 시선을 끄는 글로벌 1위 어학앱 듀오링고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듀오링고 인스타그램 캡처
스토리텔러를 고용하는 기업은 AI와 인간의 역할을 명확히 분리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채택한다. 고객관계관리(CRM) 기업 세일즈포스의 스트리밍 플랫폼 ‘세일즈포스 플러스’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세일즈포스의 콘퍼런스 ‘드림포스(Dreamforce)’는 마케팅팀이 녹화하고 편집한다. 완성된 콘텐츠를 주문형 비디오(VOD) 라이브러리로 만들어 고객에게 노출시키고 시청자의 정보를 수집해 재방문을 유도하는 일은 AI의 역할이다. 시청 데이터는 데이터 클라우드를 통해 개별 고객의 관심사와 연동되며 영업 담당자는 AI가 제시한 고객에게 맞춤형 제안을 건넬 수 있다.

한편 어학 앱 듀오링고의 마케팅에서는 진정성 프리미엄이 엿보인다. 듀오링고는 B급 감성이 풍기는 고품질 숏폼 영상으로 딱딱한 학습을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마스코트 올빼미 ‘듀오’의 탈을 쓴 사람들이 학습을 독촉하며 사용자를 쫓아다니거나 경쟁사와 디스전을 벌이는 식이다. 듀오링고의 2024년 매출은 전년 대비 40% 이상 성장했는데, 신규 유입 고객의 대부분이 유료 광고가 아닌 온드 미디어 콘텐츠와 입소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업이 ‘조회수’나 ‘좋아요’로 대신 비즈니스 성과와 연결되는 마케팅 지표를 설정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세일즈포스는 콘텐츠 시청이 실제 사업 기회로 이어지는지를 측정해 마케팅 효율을 계산한다. 듀오링고는 콘텐츠 구독자의 서비스 유지율을 측정하면서 콘텐츠가 고객 록인(Lock-in)에 미치는 영향을 주요 지표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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