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유니클로 롯데월드몰점에 설치한 그래픽 티셔츠 큐레이션 공간 ‘UT존’. 이곳의 ‘유티미(UTme!)’ 코너는 800여 종의 스티커를 조합해 나만의 티셔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니클로 제공
2025년 글로벌 패션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일본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 유니클로의 모기업 패스트 리테일링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구찌, 발렌시아가 등을 보유한 프랑스 명품 그룹 케링(Kering)의 매출을 넘어선 것이다. 특히 유니클로는 본진인 일본 시장에서 처음으로 매출 1조 엔(약 9조 원)의 벽을 깼고, 해외 시장에서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국 시장에서의 반등 역시 극적이다. 2020년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부진을 면치 못했던 유니클로는 지난해 국내 매출 1조601억 원을 기록하며 5년 만에 ‘1조 클럽’에 복귀했다. 배경엔 철저한 체질 개선과 전략적 변신이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유니클로 성공 전략을 분석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5년 12월 2호(431호) 아티클을 요약해 소개한다.
●매장 효율 견인한 ‘스크랩&빌드’ 전략
유니클로 부활의 핵심은 양적 팽창 대신 질적 성장을 택한 ‘스크랩&빌드(Scrap&Build)’ 전략이다. 수익성이 낮은 소규모 매장은 과감히 폐점(Scrap)하고, 핵심 상권에는 대형 매장을 재단장하거나 새로 지어(Build)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5년간 매장 수를 30여 개 줄이는 대신 점포당 평균 면적을 10% 넓혔다. 그 결과 점포당 매출이 13%나 증가했다. 한국 매장 수는 2020년 180여 개에서 130여 개로 줄었지만, 매출은 3년 연속 성장했다. 그만큼 내실을 다졌다는 의미다.
새로 문을 연 대형 매장은 단순한 판매 공간을 넘어 ‘지역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국내 최대 규모인 롯데월드몰점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옷을 사는 곳이 아니라 즐기는 공간이다. 그래픽 티셔츠 큐레이션 공간인 UT존에 ‘유티미(UTme!)’ 코너를 신설한 게 대표적인 변화다. 디즈니, 마인크래프트 등 800여 종의 스티커를 조합해 나만의 티셔츠를 15분 만에 만들 수 있는 곳으로 젊은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옷 수선 및 리폼을 해주는 ‘리유니클로 스튜디오’도 새롭게 선보인 요소다. 70여 가지 자수 패턴 서비스를 제공하며 ‘오래 입는 옷’의 가치를 오프라인 경험으로 생생하게 구현했다.
리유니클로 스튜디오. 옷 수선 및 리폼을 도와주며 ‘패스트 패션’이 아닌 ‘오래 입는 옷’이란 브랜드 철학을 보여주고 있다. 유니클로 제공글로벌 시장에서도 같은 전략이 실행되고 있다. 유니클로는 로마의 역사적인 번화가 코르소 거리에 대형 매장을 열었다. 고전 건축 양식을 살린 인테리어와 현지화된 서비스를 선보여 오픈 첫날부터 화제를 모았다.
지역 밀착형 매장의 확대도 주목할 만하다. 지역 공동체에 뿌리내리는 매장을 개설하는 특화 콘텐츠 전략이다. 3월 일본 다마가와 다카시마야 쇼핑몰에 문을 연 다마타카점이 이런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해당 쇼핑몰 마스코트 캐릭터 티셔츠나 지역 내 인기 스포츠인 럭비 관련 상품을 적용해 특색을 살렸다. 4월 한국에서 문을 연 제주 도남점과 서귀포점도 마찬가지다. 현무암 인테리어를 적용하고 지역 브랜드와 협업 굿즈를 만들어 로컬 커뮤니티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데이터로 빚어낸 본질, ‘라이프웨어’
유니클로는 자신을 ‘패스트 패션’이 아닌 ‘라이프웨어(LifeWear)’ 브랜드로 정의한다. 트렌드를 좇아 빠르게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는 철학이다. 이를 위해 도쿄, 상하이, 뉴욕, 로스앤젤레스, 파리, 런던 등 전 세계 6곳에 연구개발센터를 두고 고객 피드백을 반영한 제품을 개발한다.
2023년엔 고객 후기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플랫폼 ‘경영 콕핏(Management Cockpit)’ 시스템도 구축했다. 연간 3000만 건 이상의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제품 개선에 집요하게 반영한다. 최근 품절 대란을 일으킨 ‘멀티 포켓 백팩’이 대표적인 사례다. 끈을 풀기 귀찮다는 고객 의견을 반영해 측면 지퍼를 뚫고, 끈이 지저분하게 늘어진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길이 조절 장치를 추가했다. 디자인을 완전히 바꾸기보다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는 디테일 개선에 집중해 재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물론 쉬인(Shein)과 같은 초저가 ‘울트라 패스트 패션’ 플랫폼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은 유니클로에도 도전 과제다. 유행에 민감하고 소비주기가 짧은 Z세대를 상대로 ‘오래 입는 옷’이라는 유니클로의 가치가 지속해서 유효할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규모의 경제에 입힌 ‘감각적 협업’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유니클로를 ‘힙’한 브랜드로 만든 또 다른 동력이다. 질 샌더, 크리스토퍼 르메르, 조너선 앤더슨 등 명품 패션계의 거장들과 협업해 하이엔드 감성의 디자인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았다. 특히 일본 브랜드 니들스와 협업한 컬렉션은 ‘유니들스’라는 별칭까지 얻으며 리셀(재판매) 시장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협업은 철저히 전략적이다. 예컨대 ‘유니클로 C’ 컬렉션은 니트 장인인 디자이너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강점을 살리기 위해 유니클로의 기술인 ‘히트텍’과 ‘캐시미어’를 결합했다. 이름값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특기와 브랜드의 기술력을 정교하게 매칭해 상품 완성도를 극대화한 것이다. 크리스토퍼 르메르가 디렉팅한 ‘유니클로 U’ 컬렉션의 ‘크루넥 티셔츠’가 대표적인 사례로, 2월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힙합 스타 켄드릭 라마의 백댄서들이 단체로 착용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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