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직장인이 낸 근로소득세가 전체 세수(稅收)의 18%를 넘어서며 역대 최대로 치솟았다. 1년간 걷힌 근로소득세수는 기업이 낸 법인세수에 육박했다. 직장인의 ‘유리 지갑’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세수 기반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걷힌 근로소득세는 61조 원으로 전체 세수의 18.1%를 차지했다. 전년(17.2%)보다 0.9%포인트 늘어난 수준으로 역대 최대다. 2년 연속 세수 펑크가 이어진 가운데 직장인이 전체 세수의 5분의 1가량을 책임진 것이다. 전체 세수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10%대로 올라선 뒤 2019∼2022년에는 13, 14%대를 보이다가 2023년 17.2%까지 상승했다. 기업 실적 악화로 법인세수가 2년간 40조 원 넘게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법인세수는 62조5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약 18조 원 줄었다. 당초 예산을 짤 때 잡았던 법인세수(77조7000억 원)와 비교하면 15조2000억 원 덜 걷혔다. 이로 인해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8.6%까지 하락하며 2005년 이후 가장 낮았다.
불황에도 근소세 작년 2조 늘어… “세수펑크 속 직장인만 봉”
근로소득세 의존 커진 국세 수입 작년 비중 18% 넘어 역대 최대… 15년새 4.5배로 늘며 稅부담 커져 법인세는 같은 기간 1.8배 증가 그쳐… “세수 확보 위한 세제 개편 논의를”
직장인 남모 씨(38)는 연말정산 때 지난해 납부한 근로소득세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매달 약 60만 원이 넘는 근로소득세를 납부한 탓이다. 남 씨는 “연간 총급여가 9000만 원인데 매달 손에 쥐는 돈은 400만 원 후반대”라며 “기업 법인세는 경기 상황에 따라 지원 방안도 달라지는데 고물가로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직장인들의 근로소득세는 매번 꼬박꼬박 월급에서 떼 가는 걸 보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근로소득세수가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년 전 8%대에서 지난해 18%를 넘기며 2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취업자 수와 임금 증가에 따라 세수 규모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고 해도 직장인 ‘유리 지갑’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고물가로 실질 임금이 뒷걸음치고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선 “근로자만 봉”이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법인세수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세수 안정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만큼 세수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세수 펑크 메운 월급쟁이 세금
지난해 직장인이 낸 근로소득세가 역대 최대를 보인 것은 취업자가 늘어나고 근로자들의 임금이 증가한 결과다. 1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 수는 전년(2841만6000명)보다 16만 명(0.5%) 증가한 2857만6000명이었다. 흔히 ‘월급쟁이’라고 말하는 상용근로자는 1635만3000명으로 전년(1617만 명)보다 18만3000명(1.13%) 늘었다. 세금을 매기는 소득 자체도 늘었다. 더불어민주당 임광현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근로소득 1000분위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근로소득을 신고한 근로자 1인당 평균 급여액은 4332만 원으로 전년보다 2.8% 올랐다.
하지만 부족한 세수를 메워야 하는 부담은 근로자들에게 집중됐다. 지난해 근로소득세수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1%까지 상승했는데 2009년에는 8.2%에 그쳤다. 같은 기간 법인세수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지난해 전체 세수에서 법인세는 18.6%를 차지했는데, 2015년 법인세수 비중은 21.5%였다.
2023년 반도체 경기 악화로 지난해 법인세수가 급감한 탓이다. 여기에 정부가 대기업 중심의 비과세·감면 확대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는 2022∼2023년 세법 개정을 통해 법인세율을 1%씩 일괄 인하하는 등 감세 정책을 펼쳤다. 올해 전체 정부지출(재정+조세지출) 예산에서 비과세·감면 등 조세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3%로 최근 10년간 가장 컸다.
이에 따라 세수 자체도 근로소득세가 더 큰 폭으로 늘었다. 2009년 13조4000억 원이었던 근로소득세수는 지난해 61조 원으로 4.5배로 늘어났지만, 법인세수는 35조3000억 원에서 62조5000억 원으로 약 1.8배 증가했다. 지난해만 놓고 봐도 근로소득세수는 전년보다 1조9000억 원 늘어난 반면에 법인세수는 17조9000억 원 감소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에 따른 어려움은 기업과 근로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마찬가지”라며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수는 줄고 근로소득세수만 연일 증가하는 것은 직장인들의 불만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안정적인 세수 확보 방안 마련해야”
올해 세수 전망은 더욱 불안하다. 비상계엄 및 탄핵 정국, 미국발(發) 통상 전쟁 등으로 국내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업 실적 악화가 이어지고 근로소득세는 증가하는 최근 추세가 계속될 경우 올해 근로소득세 수입이 처음으로 법인세를 앞지를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에 따른 법인세 진폭이 너무 커지면서 국세 수입의 안정성 자체가 지나치게 떨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산업이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 너무 쏠려 있어 업황 부진에 따른 법인세수 감소 폭도 커진 만큼 산업 경쟁력을 여러 분야에서 확보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인세나 근로소득세의 세율을 건드리는 것은 국내 정치 혼란 등이 큰 상황에서 당장 진행하기 쉽지 않다”며 “한국의 부가가치세는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다른 선진국 대비 세율도 낮은 편인 만큼 세수 기반 확보 차원에서 이를 개편하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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