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60년 전통 전구회사, 뉴욕에 진출하다 [BreakFirst]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15일 0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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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전구의 대표작 LANDSCAPE68 옆에 선 김홍도 대표.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인류가 발견한 두 번째 불.’ 100년 넘게 인류의 밤낮을 밝혀온 백열전구는 2000년대 이르러 명맥이 끊깁니다. LED(발광 다이오드) 조명 보편화로 수요가 급감했고, 2007년 주요 8개국(G8) 정상이 에너지 효율이 낮다는 이유로 가정용 백열전구의 생산 중단을 결의했습니다. 2008년 우리 정부도 ‘2014년부터 가정용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합니다.

60년 가까이 백열전구를 만들던 대구의 작은 공장 일광전구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습니다. 매출 대부분이 정부 규제로 날아갈 판이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전구 회사처럼 LED 제품 생산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김홍도 일광전구 대표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공산품이 아닌 예술품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전구 회사가 하루아침에 ‘조명 기구 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한 겁니다. 물론 단순 작업에 익숙했던 회사와 직원들을 바꿔 가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일까요. 인스타그램에서 일광전구 제품은 ‘예쁜 조명’으로 유명합니다. 올해는 미국 뉴욕의 유명 디자인 편집숍에도 갑니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일광전구가 지금, 이 순간에도 ‘느리지만 완전한 혁신’을 이뤄내는 중이라고 평가합니다. “질풍노도를 겪고 있는 거죠.” 긴 세월 공장을 지켰던 직원들과 함께.
2022년 10월 14일 일광전구는 백열전구 생산설비를 종료했다. 1962년 설립 이래 2022년 10월까지 일광전구 공장에서 생산된 전구의 개수는 62만여 개에 달한다. 일광전구 제공


우물에 빠지면, 바닥을 쳐야 올라간다
만드는 물건이 달라지면 생산, 유통 방식뿐 아니라 직원들의 사고방식, 조직 문화까지 바뀌어야 할 텐데요. 어떤 것이 가장 크게 변했습니까?

일광전구의 ‘코어’를 다시 정립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의 미션과 비전, 핵심 가치를 재정의했습니다. 광원(光源·빛을 내는 물체)을 만드는 것이 아닌 빛 그 자체를 구현해야겠다는 거죠. 변화는 단계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처음엔 장식용 전구 판매는 허용된다는 점에 착안해서 주력 제품을 장식용 전구로 전환했습니다. 1879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전구를 본뜬 클래식 전구를 내놨습니다. 처음 시장의 반응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전구 특성상 저작권이 없었기 때문에 비슷한 디자인의 값싼 중국산 제품과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시장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가정용 백열전구 생산이 금지되자 일광전구에서 개발한 장식용 ‘클래식 전구’의 모습. 일광전구 제공

결국 2014년은 다가왔습니다. 클래식 전구를 포함한 여러 장식용 전구가 팔렸지만, 대량으로 판매하던 가정용 백열전구의 매출을 대체하지 못했습니다. 80억 원을 웃돌던 연 매출이 2020년 그야말로 바닥을 쳤습니다.

―LED 전구 생산으로 전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LED 시장은 원가 싸움이 될 거라 예상했습니다. LED 전구는 축적된 노하우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부품을 가져와 조립하는 단순 작업이죠. 자재만 있으면 가정집에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원가 싸움에서 중국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지금 상황을 보면 국내에서 LED 전구를 생산하는 업체는 거의 없습니다.

―매출 하락으로 직원들이 불안해하진 않았습니까?

내가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물에 빠지면 바닥을 쳐야 올라간다’는 겁니다. 직원들에게는 ‘우리 곧 치고 올라가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동안 벌어놓은 게 있기 때문에 까먹어도 이 정도는 버틴다’라고 했습니다.

업의 종류는 달라도, 원리를 파고 들어가면 비슷한 영역이 많습니다.
―직원들은 익숙한 업무를 중단하고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데요. 시행착오는 없었습니까.

한동안 과거의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더군요. 그럴 땐 기다려야 합니다. 나는 그걸 ‘가랑비 작전’이라 불렀습니다. 회사의 골격을 바꾸는 10년 동안 반복해 이야기했죠. ‘일광전구는 새로운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저 길로 가야만 회사가 산다. 여러분도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조금씩 스스로 해봐라. 모르면 자료를 보고 공부해라. 스스로 습득하자’라고요. 직원들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끔 유도했습니다.

―업종을 바꿔야 하는 회사의 사정과 직원들이 새로운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는 다른 문제 같기도 합니다.

두 업종 간 연관성을 찾아 인력을 재배치했습니다. 예를 들어 꼼꼼함이 ‘억수로’ 중요한 품질관리를 담당했던 직원은 조명 개발을 총괄하는 개발팀장이 됐고요. 자재 수급을 담당하던 총무팀장은 고객관리와 고객서비스(CS)부서의 관리팀장이, 생산과 조립을 담당하던 생산과장은 자재관리팀장이 됐습니다. 업의 종류는 달라도 일의 원리를 파고 들어가면 비슷한 영역이 많습니다.

일광전구에는 20~30년 장기근속자들이 많다. 대구 공장 앞 직원들 모습. 일광전구 제공
한쪽에서 가랑비에 옷 젖을 듯한 조용한 혁신이 이뤄지고 있을 때, 한쪽에서는 내부의 변화를 촉진할 ‘메기’가 투입됩니다. 회사에 디자인팀을 신설하고 외부 인력인 권순만 제로식스포 디자인 스튜디오(zerosixfour design studio) 대표를 팀장으로 영입해 전권을 부여한 겁니다.

―‘굴러들어온 돌’의 주도로 회사를 바꿔나가니 직원들 반발이 컸을 것 같습니다.

무척 많이 싸웠습니다.(웃음) 내가 머리가 아플 정도였으니까요. 30년 동안 함께 일했던 저 친구가 그만둬야 하나, 아니면 이 친구(권순만)가 새로운 일광전구를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을 포기해야 하나.

―신구 인력의 협업을 이끌어낸 방법이 궁금합니다.

권 팀장에게는 이렇게 말했죠.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한 가지 일만 해왔다. 소품종의 품목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결재 내려가는 대로 일했다. 그러니 대표인 나를 통해 직원들에게 일을 지시해주면 좋겠다’고요. 처음엔 삐걱댔지만, 시간이 지나니 돌이 마모되듯 둥글둥글해지더라고요. 이제는 양측 모두 서로의 역할을 이해합니다. 큰 다툼 없이도 손발이 척척 맞게 됐죠.

일광전구는 올 3월 ‘리빙디자인페어 2024’에 참가해 신제품을 선보였다. 일광전구 제공
대립이 그뿐이었을까요. 2016년에는 권 팀장과 김 대표가 대립합니다. 당시 일광전구는 권 팀장 주도로 조명 기구 시리즈 IK를 출범했는데, 당장 큰 폭의 매출 증가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권 팀장은 회사가 상승세로 접어들었다며 “탄력이 붙을 수 있게 투자와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투자를 지연했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2세고요. 아버님 어머님이 물려주신 기업을 잘 다듬어 후대에 물려주는 것도 제 의무입니다. 내겐 일광전구의 ‘생존’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기업의 생존에 관해 나름의 경험칙이 있었습니다. ‘사업은 흐름을 타야 한다’는 겁니다. 홍수가 나서 강물이 넘쳐흐를 때 말은 강물에서 빠져나가려 물을 역류하다가 죽습니다. 하지만 소는 흐름을 타고 하류의 육지로 내려가 살아남거든요. 일광전구를 살려줄 흐름이 곧 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흐름. 인류의 단절과 고립을 일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일광전구엔 기회가 됐습니다. ‘집콕’ 시대에 사람들은 집을 한층 따뜻하게 만들어줄 조명을 찾았습니다. 일광전구가 7년간 생산해온 제품들이 빛을 보게 된 겁니다. 연간 2만 개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는 일광전구의 스테디셀러 ‘스노우맨’이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도 그때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흐름을 기다린 대표님의 결정이 맞아떨어졌습니다.

당시의 결정이 꼭 맞았다고 볼 수는 없죠. 그때 과감한 투자 결단을 내렸다면 (일광전구가 빛을 보는) 때가 더 당겨질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효율적인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일광전구는 올 3월 ‘리빙디자인페어 2024’에 참가해 신제품을 선보였다. 일광전구 제공
다른 업종으로 전환한 일광전구가 과거와 현재의 교집합으로 삼은 건 ‘빛’입니다. 디자인 조명 기구를 팔기 시작한 일광전구가 새롭게 정한 슬로건은 이렇습니다. ‘We make Light(우리는 빛을 만듭니다).’ 일광전구는 2016년부터는 매년 개발한 신제품으로 리빙 디자인 페어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미국 뉴욕의 유명 디자인 편집숍에서도 일광전구의 조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기존에 가보지 않은 길을 매일 같이 가야 하는데, 자신감의 근거가 궁금합니다.
‘광원’을 만들던 회사가 조명 기구를 만든 사례가 없잖아요. 조명 강국인 이탈리아, 북유럽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 디자인에서 시작했지, 빛을 다뤘던 회사는 없어요. 일광전구는 60년 동안 빛을 만들고 연구해온 업력이 있습니다. 빛을 구현하는 일에는 자신이 있을 수밖에요. 지난해 매출이 2014년과 엇비슷해졌어요. 미국, 일본 등으로 본격적으로 수출하는 올해는 그보다 훨씬 상승할 것으로 자신합니다.

―25년 전 선대 회장께 물려받은 일광전구와 지금의 일광전구는 완전히 다른 회사입니다. 미래의 일광전구를 그려보신 적 있습니까.

영원히 백열전구를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이 세우신 회사에서 오랫동안 전구를 만드셨고 저 또한 20년간 전구를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전구의 시대는 저물었으니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일광전구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전구를 만들든 조명 기구를 만들든 내 업의 본질은 빛입니다. 인류의 시야를 밝혀주고 온기를 전해주는 모닥불 같은 빛. 일광전구의 처음과 끝은 빛으로 통할 겁니다.

전구 회사에서 조명 기구 회사로 전환한 지 10년이 흘렀다. 김홍도 대표는 “내 업의 본질은 ‘빛을 만든다’는 것이다. 전구를 만들든, 조명 기구를 만들든 그건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전구 회사에서 조명 기구 회사로 전환한 지 10년이 흘렀다. 김홍도 대표는 “내 업의 본질은 ‘빛을 만든다’는 것이다. 전구를 만들든, 조명 기구를 만들든 그건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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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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