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또 이상한 소리하네’…직접 선수로 뛰며 개발하자 세계가 알아줬다[BreakFirst]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8일 0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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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윤문현 바프 대표가 자사의 캐릭터인 아몬드 인형을 품에 안았다. 그는 자본잠식 상태였던 회사를 연 매출 1000억 원의 알짜 기업으로 키워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목에 핏대가 설 정도가 아니었을까. 2014년 3월 경기 광주시 길림양행(현 바프·HBAF) 사무실에서 윤문현 대표(46)는 직원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생각도 못 합니까? 말도 못 하나요? 할 수 있는 때까진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젊은 사장님이 목소리를 높여도 직원들은 냉랭했습니다. 대형마트 자체 상표(PB) 견과류 제품을 납품하던 업체인데, 시즈닝을 한 ‘맛있는 견과류’를 자체 개발해서 내놓자고 하니 직원들은 당황했습니다. 매사에 긍정적 태도를 보였던 생산팀장까지 표정이 영 별로였습니다.

“저희는 개발팀도 없는 회사인데, 어떻게 가공 제품을 만듭니까?”

개발팀은 없었지만, 윤 대표에겐 ‘생존 본능’이 있었습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돼 사라지고 만다.’ 2006년 갑자기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하게 되면서 그는 절박함을 배웠습니다. 결국 반대를 무릅쓰고 직원 1명과 함께 무작정 가공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정리해둔 레시피는 수백억 원대 매출 성장의 씨앗이 됐습니다. 유행을 넘어 사회현상으로 주목받았던 ‘허니버터’ 열풍에 빠르게 올라타는 기술적 기반이 된 겁니다. 빚을 걱정하던 회사는 연 매출 1000억 원대의 건실한 기업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괜찮은데 굳이? 왜?’라는 관성을 매번 거슬러 온 윤 대표의 몸부림의 결과입니다.
2019년 5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자이드 스포츠 토너먼트’ 개막식. 만수르 왕자(오른쪽 두 번째) 앞에 허니버터아몬드가 놓여 있다. 이후 허니버터아몬드에는 ‘만수르도 먹는 간식’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윤 대표는 “UAE에 수출된 허니버터아몬드가 흘러 흘러 그 행사까지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부다비 체육협회 제공
2019년 5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자이드 스포츠 토너먼트’ 개막식. 만수르 왕자(오른쪽 두 번째) 앞에 허니버터아몬드가 놓여 있다. 이후 허니버터아몬드에는 ‘만수르도 먹는 간식’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윤 대표는 “UAE에 수출된 허니버터아몬드가 흘러 흘러 그 행사까지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부다비 체육협회 제공


회사 사람들 모두 저를 싫어했습니다. 회사를 헤집고 있었으니까요.
―2006년 아버지의 뇌졸중으로 갑작스럽게 사업을 이어받으셨습니다.

길림양행은 미국에서 아몬드를 수입해 국내에 공급하는 단순 유통 회사였습니다. 아몬드 수입 규제가 풀리고, 공급 경로가 다양화하면서 납품처가 끊기고 있었습니다. 제조업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공장을 세우기 시작하셨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전 그때 대학을 갓 졸업하고 대기업 입사를 일주일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받게 됐는데 100억 원의 빚과 함께였습니다.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보면서 죄송함과 감사함이 겹쳤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돈 벌고 계셨구나’를 처음 깨달았거든요. 회사는 부도 직전이었지만 시도도 안 할 순 없었습니다. 제조업으로 가거나, 사업을 접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회사를 지배하던 가장 큰 관성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회사는 유통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부정적 확신이었습니다. 회사 직원, 거래처 사람들로부터 ‘제조로 가는 건 더 빨리 죽는 길이다’라거나 ‘견과류로는 돈 못 번다’ 같은 말을 듣기도 했어요. 제조 공정을 구축하려면 투자 비용이 들어가는데, 진입 장벽이 낮으니 경쟁사가 넘쳐나고 그렇기 때문에 수익은 못 내는 구조라는 말이었죠. 처음엔 회사 사람들 모두 저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사장님이 쓰러지시고, 새파랗게 어린 아들이 와서 회사를 헤집고 있었으니까요. (당시 윤 대표는 28살이었다)

―회사를 이어받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뭔가요?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가 있다고 해보세요. ‘어디를 어떤 순서로 당겨야겠다’고 계획하진 않죠? 어느 한 곳이 풀리면 옆의 것이 풀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 풀리게 됩니다. 실타래 풀 듯 문제를 풀기로 했습니다. 당장 매출을 만드는 게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대형마트는 PB 상품 개발에 한창이었는데, 먼저 그 시장을 뚫기로 했습니다. 대형마트에 견과류 PB 상품을 납품하는 업체가 당시에 7~10곳 있었습니다. 끼어들 여지가 없었죠. 그래서 전국 마트, 편의점을 돌며 ‘언제든 연락 달라’며 인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한 곳씩 거래처를 확보한 뒤에는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을 찾아서 했습니다. 판촉 사원을 두고, 시식 행사를 하는 겁니다. 인건비가 들고 사원 관리도 귀찮아 전부 꺼리는 일이었죠. 그것부터 했습니다. 모두 기피하는 일을 모아서 하다 보면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바프의 생산 공장. 바프 제공


당시 우리 회사엔 개발팀도 없었거든요.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했습니다.
대형마트에 PB 상품을 납품하면서 실타래는 풀린 듯했습니다. 회사는 2010년 460억 원, 2012년 520억 원, 2014년 65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그때 윤 대표는 또 한 차례 ‘엉킨 실타래’를 발견합니다. PB 상품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PB 상품은 대형마트라는 브랜드와 유통 채널을 활용해 마케팅이나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하고, 소비자에게 값싸게 제공됩니다. 대신 납품업체의 마진도 그만큼 적습니다. 윤 대표는 독자적인 레시피를 개발해 자체 브랜드를 만들기로 합니다. 2014년 직원들과 또 한 차례 설왕설래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매출을 보면 안정적인 상황이었는데 사업을 다른 방향으로 확대하려고 하셨습니다.

미국과 유럽을 다니며 시장 조사를 하면서 한국에도 가공 견과류 시장이 반드시 생긴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미국의 마트를 가 보면 견과류 진열대의 4분의 1은 가공 견과류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견과류에 대한 인식은 ‘건강식품’에 가까웠죠. 원물 그대로를 먹었습니다. 다양한 맛이 없었죠. 저는 견과류가 ‘스낵화’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견과류를 수입해 포장 판매하는 제조업은 진입장벽이 낮아서 경쟁사도 많았고요. 차별화가 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한국에선 가공 견과류 시장이 전체 견과류 시장의 5%도 되지 않았습니다. 또 험난해 보이는 길을 가려니 직원들의 반발이 컸을 것 같습니다.

당시 회사엔 개발팀도 없었습니다. 직원들도 냉랭했습니다. 직원 한 명을 데리고 ‘맨땅에 헤딩’으로 아몬드 가공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쿠키 가게를 운영하던 지인에게 부엌을 빌려서요. 가장 어려웠던 건 당액으로 아몬드를 코팅한 뒤 시즈닝 가루를 입히는 기술이었습니다. 코팅된 아몬드가 서로 들러붙고, 시간이 지나면 눅눅해졌거든요. 당액의 농도, 냉각 시간을 달리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해 레시피를 완성했습니다. 바로 써먹지는 못해서, 일단 레시피가 담긴 문서를 사무실 서랍 아래 칸에 넣어 놨죠.

―그 레시피 덕분에 히트 제품인 ‘허니버터아몬드’가 태어났군요.

기억하시겠지만 2014년에 허니버터칩(해태제과) 인기가 엄청났습니다. ‘허니버터고등어’ 까지 나온 걸 봤습니다. 당시 편의점 GS25에서 ‘허니버터칩같은 제품 없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유행이 한창일 때니까, 2주 안에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 당시 샘플 제조를 담당하던 직원에게 아몬드를 튀기지 말고 구워서 당액을 묻힌 뒤에 허니버터맛 가루를 입히라고 지시했습니다. 직원이 “이렇게 하면 아몬드끼리 다 들러붙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때 서랍에 넣어두었던 레시피가 떠올랐습니다. 그 레시피로 2주 만에 허니버터아몬드를 만들었습니다.

바프는 2015년 허니버터아몬드를 시작으로 36가지 맛 아몬드를 내고 있다. 허니버터맛, 와사비맛, 군옥수수맛, 마늘빵아몬드맛, 쿠키앤크림맛 순으로 많이 팔린다. 바프 제공
바프는 2015년 허니버터아몬드를 시작으로 36가지 맛 아몬드를 내고 있다. 허니버터맛, 와사비맛, 군옥수수맛, 마늘빵아몬드맛, 쿠키앤크림맛 순으로 많이 팔린다. 바프 제공

2주 만에 탄생한 ‘허니버터아몬드’는 회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습니다. 출시 첫 달 매출이 2억 원이었는데, 다음 달에는 10억 원, 그다음 달에는 20억 원이 됐습니다. 별다른 마케팅이나 판촉을 하지도 않았는데 중국업체 바이어가 회사에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수출국이 25개국으로 늘었습니다. 바프의 매출액은 2018년 1400억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돌아보면 허니버터아몬드만 반짝 성공하고 그대로 끝날 수도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허니버터아몬드를 낸 뒤 경쟁사들이 유사 제품을 만들었는데 우리 제품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았어요. 직원들도 ‘대표님, 다른 회사들은 못 따라 합니다’라고 말했죠.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허니버터아몬드 같은 제품을 만드는 건 자물쇠를 푸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000부터 999까지 세 자리를 넣으면 언젠가 풀리죠. 운이 좋으면 빨리 풀리고요. 후속 제품을 만들어 성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업체들이 자물쇠를 풀 동안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하니까요. 회사에선 ‘허니버터아몬드 생산 공정만 24시간을 돌려도 물량이 부족한 상황인데 데 왜 신제품을 얹으려 하느냐’고 반대했습니다.

―직원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신제품으로 호불호가 강한 와사비맛을 선택하셨습니다.

내부 반발이 컸습니다. 신제품도 안 되는데, 와사비맛은 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와사비맛 제품이 팔리는 걸 본 적이 없대요. 전 ‘제대로 만들면 된다’고 설득했습니다. 와사비는 원래 고기나 밥에 얹어 먹으면 잘 어우러지는 식재료잖아요. 와사비향을 메인이 아닌 ‘터치’로 기로 하고, 육수맛을 가미했습니다. ‘10명 중 9명이 5점을 줘도 한 명이 10점을 주는 제품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마니아층을 공략하면 추가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36가지 맛에 달합니다. 더 개발할 게 있을까 싶은데요.

6개월 동안 마카다미아를 비롯해서 견과류에 입힐 101가지 맛을 개발했습니다. 유럽, 미국, 일본에 비해 한국은 마카다미아 소비량이 굉장히 낮은 국가거든요. 이번에도 제가 마카다미아에 새로운 맛을 입혀서 내자고 했더니 직원들은 ‘마카다미아는 안 팔립니다. 아몬드로 내시죠?’라고 하더라고요. 이번에도 직원들에게 반문했습니다. “바프가 국내 최대 견과류 브랜드인데, 우리가 안 하면 누가 마카다미아 취급하겠습니까. 선두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서울 중구에 있는 바프 명동 1호점 매장. 명동에 바프 매장은 4호점까지 있는데, 네 개 매장의 연 매출은 150억 원을 넘는다. 바프 제공
2022년 태국에서 열린 바프의 팝업스토어. 바프 제공


좋아하는 사람 계속 생각나듯, 회사가 좋으면 계속 생각나겠죠.
인터뷰하던 윤 대표가 스마트폰을 열어 사진첩을 뒤적였습니다. 그가 내민 사진에는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 크기의 ‘딸기 맛 마카다미아’ 모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요즘 사무실에서 모형을 이리저리 만지며 ‘어떻게 하면 딸기와 비슷한 모양을 만들 수 있을까’ 고심 중이라고 합니다. 손톱 크기만 한 마카다미아의 각도까지 신경 쓸 정도로 그의 머릿속은 오직 견과류로 가득 차 있습니다.

―관성을 깨려고 할 때마다 직원들의 반발이 컸던데요. 설득의 방법이 있었나요.

회의 때 ‘사장이 또 이상한 소리 하네’라는 직원들의 표정을 종종 만나죠. 생각해보면 제가 직접 선수로 뛰는 게 가장 좋은 설득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리더라면 어떤 사안이든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는데, 그건 제가 직원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직원들도 저 같았으면 좋겠는데 억지로 되는 건 아니죠.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생각나듯, 회사를 좋아하고 회사 생활이 즐거우면 자연스럽게 계속 생각나겠죠. 직원들도 그렇게 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려고 합니다.

―바프를 어떤 회사로 키우고 싶으신가요.

‘멋있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을 멋지다고 표현할 때 여러 이유가 있는 것처럼, 멋있는 회사에도 여러 요건이 있습니다. 매출은 기본입니다. 회사의 성과는 매출이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돈만 많다고 멋있는 회사라고 하진 않죠. 직원들이 즐겁게 다녀야 합니다. 직원들의 만족감과 경험치가 업무에 반영되거든요. 그래서 회식도 평범한 곳에선 안 하고, 직원들에게 헬스장도 끊어 줍니다. 가장 중요한 건 도전정신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젤리’ 하면 독일의 ‘하리보’, ‘초콜릿’ 하면 미국의 ‘M&M’이 떠오르듯, ‘견과류’ 하면 ‘바프’가 떠오르게 만들겠다는 윤문현 대표.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젤리’ 하면 독일의 ‘하리보’, ‘초콜릿’ 하면 미국의 ‘M&M’이 떠오르듯, ‘견과류’ 하면 ‘바프’가 떠오르게 만들겠다는 윤문현 대표.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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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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