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딧 IPO 흥행 조짐…새로운 밈주식? AI 수혜주?[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0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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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디시인사이드, 밈(meme) 주식의 성지. 어디인지 아시겠죠. 바로 미국 소셜미디어 서비스 레딧(Reddit)입니다. 이 레딧의 기업공개(IPO)가 임박하면서 잠잠했던 미국 IPO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공모주 청약 열기가 꽤 뜨겁다는데요.

설립 이후 19년 동안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기업이건만. 투자자를 끌어당기는 레딧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또 알아둬야 할 리스크 요인은 어떤 게 있을까요. 벌써부터 주가가 얼마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지가 궁금해지는 기업, 레딧을 들여다봅니다.

레딧의 IPO가 순항 중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예정일은 21일. AP 뉴시스
레딧의 IPO가 순항 중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예정일은 21일.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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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 8.5조원 가나
레딧이 드디어 IPO를 합니다. 2019년 핀터레스트 이후로 처음 상장되는 미국 소셜미디어 기업입니다. 주당 31~34달러의 공모가로 2200만주를 매각하기로 했죠. 이 계획대로라면 총기업가치는 최대 64억 달러(약 8조5300억원)에 달할 겁니다.

레딧의 공모가격은 20일(현지시간) 확정되는데요. 분위기는 좋습니다. 1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미 청약 신청이 공모물량의 4~5배에 달한다는군요. 목표주가 범위에 들어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레딧 주식은 21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를 개시합니다. 티커는 ‘RDDT’.

레딧 기업가치가 64억 달러?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에 대한 판단은 물론 투자자마다 엇갈리는데요. 이전보다는 많이 겸손해진 가격임엔 틀림없습니다. 2021년 8월 마지막 자금조달 라운드에서는 레딧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를 찍었으니까요.

그만큼 금리인상으로 돈줄이 마르면서 투자자들이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죠. 동시에 이제 스타트업도 자존심을 굽히고 한층 낮은 가치 평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주가 34달러를 기준으로 할 때 레딧의 주가매출비율(=주당 매출액/주가)은 약 6.7배. 2019년 상장 당시 핀터레스트의 절반 수준입니다. 확실히 거품이 빠진 셈이죠.

레딧은 ‘인터넷의 제 1면(the frontpage of the internet)’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2005년 탄생했다. 이용자의 투표를 통해 위에 올릴 게시물이 정해진다. 레딧 홈페이지
레딧은 ‘인터넷의 제 1면(the frontpage of the internet)’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2005년 탄생했다. 이용자의 투표를 통해 위에 올릴 게시물이 정해진다. 레딧 홈페이지


19년 연속 적자 행진
레딧의 하루 활성 이용자 수는 7300만명(월간으로는 4억3000만명). 방문자 수 기준으로 세계 15위에 달하는 거대 사이트입니다. 웃긴 영상부터 온갖 정보와 뉴스, 일상 이야기까지. 10만개 넘는 게시판(레딧 용어로는 ‘서브레딧’)이 운영되고 있죠. 전체 누적 게시물 수는 10억 개, 댓글은 160억 개가 넘습니다. 정말 쉴 새 없이 새 글과 새 댓글이 올라오죠. 익명 회원(레디터)들은 놀라운 참여 열기로 커뮤니티에 활기를 더합니다. 사용자는 게시물에 대해 업(Up) 또는 다운(Down)으로 투표할 수 있는데요. 그 투표 점수(업-다운)가 높은 게시물일수록 화면 위쪽으로 올라가는 시스템입니다.

레딧 매출의 대부분은 광고에서 나옵니다. 웹사이트와 모바일앱에 광고를 띄우죠. 월 5.99달러짜리 프리미엄 구독 상품(광고 없이 이용 가능)도 있지만 매출 비중은 2%도 되지 않습니다. 2023년 레딧 매출은 8억400만 달러(약 1조700억원). 전년보다 20.5% 늘었습니다.

하지만 레딧은 한 번도 이익을 낸 적이 없습니다. 2005년 설립 뒤 지난해까지, 줄곧 적자였죠. 지난해에도 908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게시물이 주로 텍스트 기반이라서 상대적으로 서버 비용이 덜 드는 편인데도 말이죠. 번스타인의 마크 스무리크 애널리스트는 “18년이나 됐는데 여전히 수익성이 없는 회사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면서 이 점을 꼬집는데요.

사용자수와 매출은 꾸준히 성장하지만 돈을 벌진 못하는 레딧. 과연 수익성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레딧은 광고를 중심으로 매출이 성장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줄곧 적자를 면치 못해왔다. 시장조사업체 sacra
레딧은 광고를 중심으로 매출이 성장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줄곧 적자를 면치 못해왔다. 시장조사업체 sacra


돈 나올 구멍 찾았다
레딧 측은 꽤 낙관적입니다. IPO를 앞두고 올해 드디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거라는 전망을 내놨죠. 조정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차감 전 이익) 기준으로 흑자로 전환할 거라는 뜻인데요. 광고나 멤버십 구독료가 크게 늘어서가 아닙니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았기 때문이죠. 바로 데이터 판매.

레딧은 지난달 구글과의 제휴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구글이 레딧의 게시글과 댓글을 사용해 AI를 훈련할 수 있게 하는 계약을 맺은 거죠. 연간 라이선스 금액은 6000만 달러(800억원)에 달합니다.

레딧엔 그야말로 세상만사 모든 주제에 대해 관련성 높은 대화가 가득 쌓여있죠. AI를 학습시켜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데이터의 노다지나 다름 없습니다.

구글 제미나이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학습엔 방대한 데이터, 특히 텍스트 데이터가 엄청나게 필요하다. 레딧은 이를 위한 데이터의 금광이나 마찬가지다. 게티이미지
구글 제미나이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학습엔 방대한 데이터, 특히 텍스트 데이터가 엄청나게 필요하다. 레딧은 이를 위한 데이터의 금광이나 마찬가지다. 게티이미지
마침 생성형 AI 붐이 일고 있으니 구글 말고도 이런 데이터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겠죠. 뉴스트리트리서치의 댄 새먼 애널리스트는 이런 고마진 사업이 2027년엔 레딧 총매출의 32%를 차지할 정도로 커질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이런 시나리오대로라면 레딧의 조정 EBITDA가 지난해 -6930만 달러에서 올해는 +1억7200만 달러로 불어날 거라고도 전망했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남겨서 그동안 쌓여온 게시물과 댓글이 이렇게까지 돈이 된다니. 참신한 비즈니스 모델이 아닐 수 없는데요. 물론 이 AI 붐이 언제 꺼질지는 알 수 없다는 건 위험요인이기도 합니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가 최근 레딧이 AI 학습용으로 사용자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과 관련해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부담이긴 하고요.

레디터를 주주로 모십니다
레딧의 정체성은 결국 온라인 커뮤니티입니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의 흥망을 결정하는 건 유저들인데요. 특히 레딧은 다른 소셜미디어 기업보다 사용자 의존도가 훨씬 높습니다. 게시판을 실제 열고 운영·관리하는 건 ‘중재자(moderator)’라고 불리는 사용자들이죠.

레딧의 정규직원 수는 2013명밖에 안 되는데요. 레딧에서 활동하는 중재자 수는 하루 6만명이나 됩니다. 게시판이 주제에 맞게 운영되도록 스팸과 악플을 지우고 규칙을 적용하는 일을 죄다 중재자들이 하죠. 사실상 이들의 무급 노동에 의지해 굴러가는 커뮤니티입니다.

그래서겠죠. 레딧은 이번 IPO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공모 주식 중 176만주(8%)를 1월 1일 이전에 가입한 사용자와 회사 임직원 가족 등에 배정하기로 했습니다. 레딧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서 포인트 점수인 ‘카르마(Karma)’를 많이 얻은 사용자일수록 더 많은 공모주를 배정받습니다. 그동안은 평판을 과시하는 것 말고는 딱히 쓸 데가 없었던 카르마가 이제야 돈이 되는 셈이죠(물론 주가가 공모가보다 떨어지면 되레 손해이지만).

미국 공모주 청약은 보통 기관투자자들만의 잔치이죠. 개인투자자를 위한 일반청약 절차가 따로 없어서 일반적으로 미국 IPO에선 개인이 공모주에 투자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데요. 그래서 레딧의 이런 결정이 눈길을 더 끕니다.

레딧은 사용자 중 평점 포인트인 카르마가 높은 사람에겐 더 많은 공모주를 배정한다고 밝혔다. 레딧 홈페이지
레딧은 사용자 중 평점 포인트인 카르마가 높은 사람에겐 더 많은 공모주를 배정한다고 밝혔다. 레딧 홈페이지


자칫하면 밈 주식 될라
여기까지만 보면 이용자와 상생하는 훈훈한 스토리이지만. 바로 이 점이 레딧엔 큰 위험 요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레딧 사용자들이 배정받는 주식은 기관투자자와 달리 보호예수 기간이 적용되지 않거든요. 즉 공모주를 받은 개인 주주는 거래 개시 당일부터 주식을 팔 수 있습니다.

그런데 레딧 사용자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2021년 공매도 세력에 맞서 게임스톱 주가를 일주일 만에 700% 폭등시킨 밈 주식 열풍의 주역 아닙니까. 레딧 공모주를 손에 넣은 이들은 이번엔 또 어떻게 떼를 지어 움직일까요.

FT에 따르면 이미 레딧 주식이 새로운 ‘밈 주식’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미 나온다는데요. 이 점을 레딧 경영진도 알고 있는 듯합니다. 레딧은 투자설명서에서 주식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를 언급하며 “주식 가격과 거래량이 우리의 기본 비즈니스나 거시경제, 산업 펀더멘털과 무관한 이유로 극심한 변동성을 경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밈 주식 조상’ 게임스톱 사태가 기억 안 나는 분을 위해 소환한 최근 5년 주가 그래프. 2021년 1월 초까지 4달러대였던 주가가 1월 말엔 81달러로 3주 만에 20배로 뛰었다. 이후 급락-급등을 반복. 구글 금융
‘밈 주식 조상’ 게임스톱 사태가 기억 안 나는 분을 위해 소환한 최근 5년 주가 그래프. 2021년 1월 초까지 4달러대였던 주가가 1월 말엔 81달러로 3주 만에 20배로 뛰었다. 이후 급락-급등을 반복. 구글 금융
하지만 좀 다른 해석도 나옵니다. 레딧이 사용자에게 배정한 공모주 물량 비중이 묘하다는 거죠. 레딧은 최대 8%를 할당했는데요. 이는 과거 에어비앤비(호스트에게 7% 배정)나 우버(운전자에게 3% 배정)와 비교할 때 그렇게까지 크진 않죠. 특히 ‘미국 개미의 성지’로 통하던 주식거래 앱 로빈후드가 2021년 상장 당시 무려 25%를 이용자에 배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 보수적인 결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FT는 칼럼에서 “레딧의 행동은 레딧을 그토록 상징적으로 만든 파괴적인 정신을 조용히 거부하는 것”이라며 “이 IPO가 커뮤니티를 위한 가치 창출보다는 소유주를 위한 가치 극대화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합니다. 동시에 이렇게 꼬집죠.“레딧은 재정적 성숙을 위해 공동체 정신을 버렸다.

참고로 레딧의 최대주주는 미국 출판재벌인 뉴하우스 가문의 어드밴스입니다. IPO 이후엔 전체 지분의 약 26.5%를 소유하게 되죠. 2대 주주는 중국 텐센트(9.7%)이고요.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 관련된 법인 5곳이 그다음으로 많은 지분(7.6%)을 보유하게 됩니다.

예상치 못했던 샘 올트먼 이름이 대주주 명단에 등장해서 다들 깜짝 놀랐는데요. 이 중 정확히 샘 올트먼 개인 소유 주식이 얼마나 되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이번 IPO로 그가 가진 레딧주식 자산 가치가 약 6000만 달러(약 800억원)로 불어날 거라는 추정을 내놨죠. 참고로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가 집계한 올트먼의 보유자산 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6700억원). By.딥다이브

얼마 전 뉴스레터에서 레딧 IPO 기사를 전해드렸더니, 구독자님이 레딧이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느냐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레딧의 수익모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게 됐습니다. 이런 질문과 의견, 늘 환영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밈 주식의 성지, 소셜미디어 레딧이 IPO에 나섰습니다. 공모주 청약 열기가 일면서 순조롭게 21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할 전망입니다.

-레딧의 지난해 매출은 8억 달러. 하지만 설립 뒤 한번도 이익을 내본 적이 없다는데요. 올해는 아마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구글 같은 AI 개발 기업에 AI 학습용으로 레딧의 사용자 콘텐츠를 판매하는 데이터 사업이 새로운 수익원이 됐기 때문입니다.

-레딧의 생명줄을 쥔 건 결국 사용자입니다. 레딧은 공모주 물량의 일부를 사용자들에 배정하기도 했는데요. 이러다 레딧이 혹시 밈 주식 되는 건 아닐까요. 어쨌거나 샘 올트먼은 대박 날 것 같습니다.

*이 기사는 1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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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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