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에 생계를 건 삼성맨, 한남동의 치즈 명가를 세우다 [브랜더쿠]

  • 인터비즈
  • 입력 2023년 4월 26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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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치즈플로
출처 : 치즈플로


체다, 모짜렐라, 파마산...우리에게 치즈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들은 2000여 개에 달하는 전체 치즈 종류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 중 체다와 모짜렐라 치즈 등이 유명한 이유는 이들 치즈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원유, 렌넷(응고제), 유산균, 소금만을 섞어 오랜 시간 자연 발효 과정을 거친 치즈는 '자연 치즈'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우리에게 익숙한 치즈는 대부분 식품 첨가제를 추가해 공장에서 단기간에 대량 생산한다. 치즈가 주식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자연 숙성 방식으로 다양한 품종의 치즈를 생산해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내 치즈 시장은 가공 치즈 중심으로 발전하게 됐다.

하지만 어느 산업이든 '아웃라이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보통 특정 분야에 덕후인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손수 만든 자연 치즈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치즈플로'의 조장현 대표가 그 예다.

2016년 조 대표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국내 최초로 아티장* 치즈 레스토랑 치즈플로를 오픈한 것. 치즈라고 하면 체다, 모짜렐라, 파마산 등 가공 치즈만 주로 팔리던 당시 한국의 현실에서 자연 치즈를 파는 레스토랑을 연다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은 도박이었다.

*아티장: 장인 정신으로 소량만 빚어낸 음식

사업 초기 주변 반응은 냉정했다. 자연 치즈를 찾는 사람도 적었지만 가끔 손님이 매장을 찾아와도 "치즈 하나가 뭐 이렇게 비싸"라며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였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복주머니 모양의 부라타, 트러플과 곰팡이균을 가미한 브리 등 10여 가지 자연 치즈를 직접 제조해 팔았지만 수요가 많지 않았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한남동의 핫플레이스가 되기까지 3년간 숱한 고비를 맛봤다고 한다. 7년간 아티장 치즈 레스토랑의 길을 걸어온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진역 인근에 위치한 치즈플로_출처 : 브랜더쿠


삼성맨 버리고 꿈 찾아 나선 늦깎이 셰프
조장현 대표가 처음부터 셰프의 길을 간 것은 아니다. 그는 셰프가 되기 전 10년 차 삼성맨이었다. 1992년 삼성전자 해외수출팀에 입사 후 복합기와 프린터 수출 업무에서 사내 해외 연수 대상자에 발탁될 정도로 우수한 실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1997년 들이닥친 IMF(외환위기) 이후 조 대표는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퇴직 이후의 삶을 고민하게 된다. 끝내 전업을 결심한 후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화가도 고민했지만, 뒤늦게 예술가의 길을 걷기엔 부양해야 할 아내와 자녀들이 아른거렸다. 예술이 결합된 경제 활동을 찾던 중 요리에 주목했다. 재료를 조합해 한 접시를 완성하는 행위가 여러 색으로 한 폭을 칠하는 미술과 유사하다는 점에서였다.

그렇게 35살 무렵 그는 가족들과 함께 120년 역사를 구가하는 영국의 '르꼬르동 블루' 요리 학교로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에는 르꼬르동 블루의 서울 캠퍼스가 설립되기 전이었고, 본교인 프랑스 캠퍼스에서 교육 과정을 이수하려면 능통했던 영어 대신 불어를 새로 배워야 했기에 영국행을 택했다. 당시 초등학교 1~2학년이던 자녀들의 어학연수를 고려해봐도 영어권 국가인 영국이 더 적합해 보였다.

치즈플로 제조실에서 숙성 중인 치즈_출처 : 치즈플로

패기 넘치게 도전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집 월세만 약 200만 원, 생활비까지 포함하니 3개월 만에 1000만 원이 소진됐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실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남은 방을 대학생들에게 임대 줘야 할 판국이었다. 1년 동안 학업과 동시에 레스토랑에서 실전 경험을 쌓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매장 이전을 앞두고 딱 1년만 일할 파트타이머를 구하던 레스토랑이 요리 유학생에게도 기회를 준 것.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조리 보조를 맡으며 8kg이나 감량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냈지만 응원하는 가족이 있기에 묵묵히 버텼다.

독이 든 성배를 마시고 치즈에 눈 뜨다
2005년 조 대표는 유학을 마치고 서초구 서래마을에 양식 레스토랑 '키친플로'를 오픈한다. 국내 레스토랑 업계의 실험적인 맛이 부재하다는 빈틈을 파고들어 생소하던 수비드 공법의 돼지고기 요리를 내보였다. 불이 아닌 물로 익힌 돼지고기로 입소문 나며, 오픈 2개월 만에 예약 문의가 쇄도할 정도로 성행했다.

예상치 못한 성공은 오히려 독이 됐다. 무턱대고 매장 규모를 2층까지 확장하는 등 외적인 부분에만 욕심낸 것. 넓어진 면적만큼 손님도 늘 거란 기대는 착각에 불과했고, 결국 막대한 공사비만 부담한 꼴이 됐다. 그는 "요리가 아닌 부차적인 요소만 중시하며 경솔했던 시기"라고 자책했다. 상권에 불어닥친 브런치 레스토랑과 이자카야의 인기도 위험요소였다. 손님들이 점심에는 브런치를 먹고, 저녁에는 이자카야로 이탈한 탓에 월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외식업에선 상권의 변화에 의해서도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감한 순간이었다.

결국 키친플로를 폐점한 그는 이를 계기로 유행을 타지 않는 메뉴에 주목한다. 그 결과물이 2010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문을 연 '쉐플로 도곡점'이다. 직접 만든 치즈와 샤퀴테리*가 이곳의 시그니처다. 치즈와 샤퀴테리는 100년 넘게 양식 재료로 사랑받아왔지만 국내의 경우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이 만연했기에 직접 만든 치즈와 샤퀴테리로 요리를 선보이면 손님들에게도 특별한 한 끼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빙 과정에서 100% 수제임을 다시금 강조하며 단골들을 확보했고 도곡점을 오픈한 지 채 2년이 안 돼 신사점을 추가 출점하는 데 성공한다.

*샤퀴테리: 염장, 훈연, 건조 등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햄

쉐플로에서의 요리 과정_출처 : 치즈플로

한편 매장이 번성했음에도 조 대표에게 치즈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해외 자료를 찾아보며 오로지 독학만으로 제조했기 때문이다. 손님들에게 호평을 받긴 했지만 자진해서 치즈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또다시 폐업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 전망했고, 내공을 쌓기 위해 2013년 뉴질랜드로 치즈 유학길에 오른다. 한국에 남은 가족들과 사업체를 감안했을 때 스스로에게 허락한 시간은 오직 한 달. 쉐플로 신사점과 도곡점의 경우, 직원들에게 한 달 동안 경영권을 위임했다. 대표가 부재한 상황에서 매장이 제대로 관리될까 싶지만 직원들의 책임감을 향상시키기 위해 월마다 매장 수익의 일정 비율을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지분 제도'를 오픈 초부터 도입했던 터라 직원들 역시 한 달간 매출 유지를 위해 힘썼다.

덕분에 조 대표는 뉴질랜드의 치즈 셰프 닐 윌먼(Neil Willman)의 치즈 마스터 교육 과정을 이수하며 홀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제조과정에서의 궁금증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의 경험은 호두와 자두 토핑을 곁들인 크림 치즈 등 치즈플로만의 메뉴를 탄생시킨 자양분이 됐다.

자연치즈를 찾아 나선 원유 탐험가
뉴질랜드에서 치즈를 곁들인 다이닝 메뉴와 포장용 치즈를 함께 판매하는 레스토랑을 보며 조 대표는 새로운 비전을 품었다. 쉐플로의 식재료로만 자연 치즈를 활용하기보단, 아예 치즈에 특화된 레스토랑 치즈플로를 선보이겠다는 꿈이었다. 당시 쉐플로의 월별 매출액 추이가 안정적이었던 점도 그가 새로운 꿈을 꾸는 데 일조했다.

치즈플로의 무대로 한남동을 선정한 이유는 이태원과 가깝고 유동 인구 중 외국인의 비율이 높아 이국적인 레스토랑에 대한 거부감이 낮다는 점에서였다. 당시 쉐플로의 매출만으로는 창업 자금을 전부 충당할 수 없었기에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금을 받아 지금의 공간을 간신히 계약했다. 설비를 확보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시제품이 전무하던 자연 치즈 생산용 기계를 완성하기 위해 직접 설계도를 그려 주문 제작했고, 국내 생산할 수 없는 장비들은 해외 사이트를 일일이 검색하며 직구매했다.

매장을 구한 건 시작에 불과할뿐 국내에서 자연 치즈를 개발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제조과정에서 우유가 아닌 원유가 필요한데 원유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참고로 시판용 우유는 이미 130도 이상의 고온 살균을 거쳐 단백질과 지방이 변성됐기 때문에 응고되지 않는다. 조 대표는 '치즈의 완성도란 재료에서 결정된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 목장을 수소문했다. 거래 가능 여부를 사전조사한 후 직접 목장을 방문하는 수고로움까지 감내했다. 원유 출하량이 안정적인지, 성분 검사표 관리가 체계적인지 등을 파악한 끝에 파주에서 최적의 거래처를 찾아낸다.

치즈플로 매장 내부_출처 : 치즈플로

재료를 확보했다는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위기에 직면한다. 낙농진흥회가 협회 차원에서 관리하기 어려운 목장과 자영업자 간의 원유 직거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조 대표는 상황을 타개하고자 아예 목장과 함께 농업 공동 법인을 설립했다. 마침 원유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싶던 목장 측의 상황과도 부합했기에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현재 이곳에선 키친플로 때부터 조 대표와 함께 주방에서 일한 수제자가 치즈플로의 컬리 납품용 상품을 제조한다.

물류비 또한 만만치 않은 골칫거리였다. 파주에서 서울까지 일 배송료만 13만 원. 필요한 만큼 소량씩 매일 배송받아서는 도저히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였다. 결국 비용 절감 차원에서 한 번에 다량의 원유를 배송받는 방법을 택했다. 문제는 원유가 쉽게 상하기 때문에 상하기 전에 모두 소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조 대표는 레스토랑에서 일평균 2~3회 꼴로 나눠서 치즈를 제조한다. 치즈 종류마다 레시피가 상이하며 시간대별로 발효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 조건상 동시에 여러 치즈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인기 메뉴인 부라타 치즈를 예로 들어보자. 원유를 적정 온도에 맞춘 후 유산균을 배합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이후 렌넷(응고제)을 더해 굳힌 후, 계속 저어주며 굳혀진 원유 덩어리 내부에 남은 유청(액체)을 빼줘야 한다. 모든 유청이 빠져 완전히 탈수되면 발효 상태를 체크한 후 곧바로 냉동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상온 보관할 경우 내부에 잔열이 남아 치즈의 탄성이 저해되기 때문이다. 고형에 뜨거운 물을 부어 해동시키면 막바지 작업에 다다른다. 늘어나는 치즈를 복주머니 모양으로 만들고 준비된 치즈 끈으로 묶으면 부라타 치즈가 완성된다. 한 가지 치즈를 완성하는 데 약 6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저녁 11시에 퇴근하는 날이 허다하다.

치즈플로에서의 치즈 제조 과정_출처 : 치즈플로

하지만 조 대표는 들인 정성만큼 판매가를 높여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대형마트에 가면 수입 치즈가 1만 원대인데 아티장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3만 원을 받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원가율과 수입 치즈의 평균 가격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판매가를 책정하는 까닭이다. 실제 치즈플로의 아티장 치즈 가격은 100g당 7000~1만 원대, 자연 치즈임에도 비싸지 않다는 후기가 자주 목격된다. 오픈 초반과 달리 그라나파다노, 브리 등 이색 수입 치즈가 국내에 유통되며 치즈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준치가 상승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창업 초기 5000원 대 슬라이스 체다 치즈와 비교되던 치즈플로에게 적합한 비교대상이 생긴 셈이다.

조 대표는 가격 인상을 방지하기 위해 설비 투자를 최소화한다고 밝혔다. 자연 치즈의 제조 과정 중 자동화 설비로 효율화할 수 있는 부분은 원유 배합과 포장 등의 단순 작업뿐이다. 원유 고형분을 해동하고 늘리는 과정은 치즈의 품질과 직결되고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므로 수작업이 원칙이다. 정리하면 수작업 인력이 단둘(조 대표와 수제재)뿐인 상황에서 단순 작업의 속도가 빨라진다 해도 생산량을 급증시키기 어렵다. 무작정 설비에 투자하면 아무런 효과도 달성하지 못한 채 기계 구매로 인해 고정비만 상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고정비 부담 때문에 가격을 인상할 바엔 저와 수제자가 단골들의 수요량을 만족시키는 데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추후에 수작업 인력이 충원되면 설비에도 투자할 계획입니다."

SNS로 기사회생 후, 치즈에만 승부를 걸다
자연 치즈를 공들여 빚어도 이를 알리는 것은 별개의 난제였다. 2018년 이전까지 국내에서 자연 치즈가 흔치 않았던 데다, 대량생산된 체다와 모짜렐라가 가격 장벽을 낮춰놓은 탓에 손님들이 1만 원대 치즈에 유쾌하게 반응할 리 없었다. 오픈 후 3년간 판매량보다 버리는 치즈가 더 많을 정도로 적자의 늪에서 허덕였다. 그나마 쉐플로 신사점과 도곡점에서 창출되는 수익으로 하루하루 간신히 버틸 뿐이었다.

어느 날 조 대표는 아내이자 현재 치즈플로의 공동 CEO인 한혜션 대표의 제안에 눈이 번뜩였다. 맛있으면 손님들이 알아서 올 거란 관념에서 벗어나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이후 한 대표가 고려대학교의 외식업 온라인 마케팅 교육 과정을 이수하며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인스타그램 마케팅에 돌입했다.

현재 치즈플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1.1만 명. 치즈 종류와 레시피, 맛있게 먹는 팁 등을 공유하며 쌓아 온 팬덤이다. 손님들에게 필요한 정보이자 메뉴에 대한 전문성을 어필할 수 있는 주제였다. 본업인 요리에 방해되지 않도록 매장에서의 에피소드를 적극 활용하며 제작 부담을 최소화했다. 찰흙처럼 쌓인 치즈 블록들과 원유의 응고 과정은 호기심을 유도하는 데 제격이었고, 제조 과정을 빠르게 편집한 영상과 치즈의 확대 이미지 등 게시물 형태를 다양화한 것도 이로웠다. 시그니처 메뉴들의 기획과정, 페어링하기 적합한 와인 등 메뉴판에 담지 못한 정보들까지 다뤘다.

치즈플로의 다양한 치즈_출처 : 치즈플로

분기 동안 좋아요를 30개도 못 받는 날이 잦았지만, 1년간 묵묵히 업로드하며 팔로워 1천 명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시기에 국내에서 수입 치즈 붐이 일며 관련 해시태그를 타고 유입된 팔로워 수 역시 급증했다. 축적된 게시물을 컬리와 각종 방송사에게 주목받는 데 기여했고,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팔로워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선순환이 완성됐다. 예컨대 2019년 Olive 채널의 수요미식회와 이듬해에 SBS 생활의달인에 연이어 출연한 후 2020년 연 매출이 직전 연도 대비 50% 급증했다. 예약 문의가 잇달았고 치즈 포장 주문량 역시 대폭 늘었다.

기쁜 날의 연속이었지만 조 대표 혼자서 치즈플로와 쉐플로를 동시에 운영하기란 쉽지 않았다. 치즈플로에서 하루 종일 치즈를 제조하다 보니 쉐플로 신사점과 도곡점에 방문하지 못하는 날도 빈번했다. 쉐플로 직원들 덕분에 매출액이 유지됐지만 스스로 장인정신을 발휘할 수 없는 실정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쉐플로 매장 사업에서 손을 떼는 단호한 면모도 보였다.* 혼자서 3개 매장을 운영하며 이도 저도 안될 바에는 가장 몰입하고 싶은 사업에 주력하자는 판단이었다. 동시에 쉐플로 직원들에게 무책임한 대표가 되지 않기 위해 희망자에 한해 치즈플로에 고용한 후 지금까지도 함께 일하고 있다.

*현재 매봉역 인근에 위치한 쉐플로는 조 대표에게 사업을 인계받은 매니저가 운영 중이다.

무료로 즐기는 치즈 페스티벌
매장 휴무일(월)엔 치즈플로에서 특별한 파티가 열린다. 한 대표가 기획한 '치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른바 '치사모'다. 무료 행사임에도 신메뉴 시식회와 아티장 푸드 장인들의 클래스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개최되는데, 매 회차마다 공지 하루 만에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한 대표가 독서 모임에서 읽은 『당신을 초대합니다』도서로부터 영감을 받아 기획한 이벤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을 클라이언트로 두고 있는 행동과학자 '존 리버'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방법을 담아낸 도서다. 한 대표는 책을 읽은 후 손님들과 소통하며 영감을 받고 서로 도울 수 있는 치즈플로만의 커뮤니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첫 행사 때는 '오늘만큼은 즐겁게 먹고 놀자'는 기획의도를 철저히 반영해 치즈플로의 메뉴들을 먹으며 자유롭게 대화했다. 이후 차별화의 일환으로 클래스를 더했다. 조 셰프가 직접 모짜렐라 제조 과정을 시연하거나 과일잼, 유기농 식초 등 다양한 식음료 분야의 아티장 셰프들이 호스트로 등장하며 클래스를 제공한 것. 외식 창업가들끼리 모여 업계 이슈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이거나 고민 상담을 들어주기도 한다. 무료인 탓에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까 싶지만 치사모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단골손님으로 이어진다. 지인들에게 치즈플로를 알리며 홍보대사를 자처할 정도다.

치즈플로의 치사모 현장_출처 : 치즈플로

외골수의 자세로 내공을 쌓아 온 조 대표. 그에게 치즈플로에게 향후 계획을 묻자 K-아티장 치즈의 매력을 알리는 데 주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세계 치즈 대회에 출품할 신메뉴를 개발하고, 제자 양성을 위해 치즈 교육 사업도 구상할 예정이다.

동일한 원유로 만들어도 발효 시간에 따라 치즈의 질감과 향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아티장 치즈의 유니크함은 배가되는 셈이다. 치즈플로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국내에서 아티장 치즈를 알리기 위해 조 셰프가 인내했던 시간이 쌓여 지금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났으니 말이다. 쿰쿰한 치즈처럼 이 아티장 레스토랑의 매력이 얼마나 짙어질지 기대되는 이유다.

인터비즈 이한규 기자 hanq@donga.com
#인터비즈#브랜더쿠#치즈#치즈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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