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당사자 대면보단 주민자치기구로 갈등 해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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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이렇게 풀자]〈3〉제3자 분쟁조정 제도화 필요
단지내 분쟁조정기구 운용 가능 “임의규정 강제조항으로 바꿀 필요”
“당사자 대면 물리적 충돌 우려, 전문가 등 제3자 객관적 조정을”

서울의 한 계단식 아파트에서 마주 보고 사는 A 씨와 B 씨 사이에서 최근 소음 분쟁이 발생했다. A 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B 씨 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린다’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는 반복적인 기계음으로 신경 쇠약 직전까지 가서 병원까지 다니면서 약을 먹고 있다고 했다. 반면 B 씨는 A 씨에게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라며 집 내부까지 모두 보여주면서 누차 설명했는데도 A 씨가 믿어주지 않는다며 억울해했다.

다행히 이 아파트에는 동 대표들이 참여하는 ‘층간소음관리위원회’가 있었다. 위원회는 소음 측정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소음원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그 결과 소음의 정체가 밝혀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브레이크 소음이었던 것.

B 씨는 자신은 난청이 심하고 소음에 둔감한 편이라 기계음은 잘 안 들린다고 했다. 반면 A 씨는 음악을 전공해 귀가 예민해 다른 가구 거주자들이 잘 못 듣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A 씨는 소음원을 파악한 뒤 어쩔 줄 몰라 하면서 B 씨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했고, B 씨는 화내지 않고 오히려 오해가 풀려 다행이라며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층간소음이 전 국민적 스트레스가 됐지만, 분쟁을 해결할 방법이 당장은 마땅치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파트나 연립주택을 설계 및 시공할 때부터 소음과 진동이 전달되지 않도록 강제적 규제 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또 소음 진동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개입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데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나 빌라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분쟁이 생기면 당사자 간에 해결이 어려운 만큼 분쟁이 더 커지기 전에 지역 공동체가 나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 등 정부가 운영하는 층간소음 분쟁조정기구도 있지만, 쏟아지는 민원에 비해 인력이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방문 조사가 이뤄지기까지 몇 개월씩 걸리기 일쑤다.

층간소음 관련 규정인 공동주택관리법 제20조(층간소음의 방지 등) 7항은 ‘층간소음에 따른 분쟁의 예방 조정 교육 등을 위하여 자치적인 조직을 구성하여 운영할 수 있다’고 정해놓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이 직접 층간소음 분쟁조정기구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병량 한국환경공단 주거환경관리부 과장은 “국민들의 층간소음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임의 규정인 층간소음 분쟁조정기구 설치 조항을 ‘조직을 구성하여 운영하여야 한다’는 식의 강제조항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소음 분쟁 당사자가 이미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직접 대면하면 자칫 물리적 충돌 등 위험한 사태로 치닫는 경우도 많다”며 “분쟁조정위원회나 전문가 등 제3자가 객관적 입장에서 조정하는 게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층간소음#주민자치기구#분쟁조정 제도화#소음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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