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앞 잠복하다 기습하니… 명품가방-그림 ‘와르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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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자들의 ‘저승사자’ 국세청 조사관들의 숨긴 재산 찾기
거주 추정지 물색해 며칠간 지켜봐… 본인 확인하면 들이닥쳐 압류 집행
직업 분석해 10억 분재 찾아내기도

“체납자를 찾을 때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잠복해야 합니다.”

국세청 징세과 징세4팀의 A 조사관은 체납자를 추적하는 고충을 이같이 전했다. 징세4팀은 국세청에서 고액 상습 체납자를 찾아내 밀린 세금을 받거나 재산을 압류하는 업무를 총괄한다. 이때 압류되는 부동산, 예술품, 자동차, 시계 등이 공매에 오른다. 국세청 조사관들이 ‘알짜 공매 물건’들을 발굴해 내는 셈이다. 체납자들의 귀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공매에 나올까.

조사관들은 귀중품을 압류하기까지 끈질긴 추적에 추적을 거듭한다. 물품을 빼앗아 체납자가 밀린 세금을 제대로 내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다. 국세청 조사팀은 2019년 고액 체납자 B 씨를 찾아내 귀중품을 압류하느라 진땀을 뺐다. B 씨는 부동산 개발회사 여러 곳을 운영하며 종합소득세 25억 원을 체납한 상태였다. 조사관들은 B 씨 거주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급 단독주택에 배우자와 자녀가 전입신고 돼 있을 뿐 B 씨의 흔적이 없었다. 이 주택은 성벽 같은 외벽으로 둘러싸여 내부가 보이지도 않았다.

조사관들은 이 주택 앞에서 며칠간 잠복했다. B 씨에게 들키지 않으려 여러 대의 차량을 번갈아 타고 숨어 주택 앞을 지켰다. 밤낮으로 집 앞에서 버틴 끝에 선글라스를 낀 채 이 주택을 들락거리는 B 씨를 발견했다. ‘언제 집으로 들어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조사팀은 B 씨가 차량을 타고 주택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를 막아섰다. B 씨는 강하게 저항하다가 경찰이 출동했다는 소식에 어쩔 수 없이 집 문을 열었다. 집엔 고급 모피와 명품 가방 및 시계, 고가의 그림이 즐비했다. 조사팀은 6000만 원 상당의 시계와 그림, 1400만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체납자 집에 재산이 온전히 남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재산을 숨기는 체납자들이 더 골칫거리다. 조사팀은 체납자들이 은닉한 재산을 찾아내려 면밀하게 조사한다. 조사팀은 2019년 세금을 체납한 C 씨 주변을 탐색했다. 오랜 탐문 끝에 그가 서울 서초구의 비닐하우스 4개 동에서 분재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알고 보니 그는 재산 압류를 피하려 본인 명의 부동산을 모두 처분한 뒤 분재 수백 점을 사뒀다. 국세청은 분재 377건을 가져와 다음해 공매에 넘겼다. 분재의 감정평가액만 122억 원이었다. 이 중에는 수령이 1500년으로, 감정평가액이 10억 원에 이르는 분재도 포함됐다.

국세청은 체납자 재산 중 어떤 품목을 우선적으로 압류할까. 환가성 좋은 현금이 압류 1순위다. 생필품이 아니면서 가격이 나가는 물건은 대부분 압류된다. 국세청은 압류 물품의 값을 감정평가사를 통해 따진다.

국세청이 어렵사리 압류한 물건들은 체납자가 세금을 계속 내지 않으면 공매로 간다. 국세청 관계자는 “계속 버티던 체납자들도 압류한 재산을 공매한다고 하면 경각심을 갖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체납자 본인은 공매에 나온 부동산이나 물건을 낙찰받을 수 없다. 낙찰 대금도 은닉 재산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족이 낙찰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낙찰 대금이 어디서 왔는지 확인한다. 체납자가 가족 명의로 빼돌린 재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매로 발생한 매각대금은 국세로 우선 징수된다. 잔액은 건강보험료 등 다른 체납 공과금 등으로 납부된다.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체납자#저승사자#국세청 조사관#숨긴 재산#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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