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男 절반이 ‘삼미남’…“결혼? 내 행복에 투자할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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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대한민국 ‘30대 미혼남’이 사는 법
“혼자가 편해”… 50.8%가 미혼
“치솟는 집값에 마음 비워”… 정부 정책 다시 세울 때

《“결혼을 굳이 해야 하나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 씨(31)는 평일 저녁엔 킥복싱, 주말엔 서핑을 배운다. 앞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캠핑하는 ‘모터 캠핑’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배우고 즐기는 데 쓸 돈과 시간은 늘 부족하다. 결혼 생각은 없다. 치솟은 집값은 그나마 남아 있던 결혼 의지마저 꺾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했는데도 집이 너무 비싸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젠 30대 남성 둘 중 한 명은 미혼이다. 지난달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30대 남성 미혼율이 50.8%로 2015년(44.2%)보다 6.6%포인트 늘었다.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30대 여성 미혼율(33.6%)보다 17%포인트가량 높다.

‘삼미남(30대 미혼 남성)’은 왜 ‘결혼 태업’을 할까. 이들은 ‘배우자보다 나’ ‘노후보다 현재’에 몰두하고 즐긴다. 최근 집값 급등에 비자발적 삼미남이 된 이들도 있다. 앞으로 ‘비혼’으로 살겠다는 삼미남도 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오미남(50대 미혼 남성), 육미남(60대 미혼 남성) 등 ‘고령 1인 가구’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비해 1인 가구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삼미남, “혼자가 편해”, “집값 부담스러워” 결혼 태업


삼미남들은 ‘혼자가 편하다’며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한다. 동아일보가 취업 사이트 잡코리아에 의뢰해 12∼15일 30대 미혼 남녀 548명(남성 295명, 여성 253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들은 결혼 계획이 없는 이유로 ‘혼자가 편해서’(54.1%)를 가장 많이 꼽았다.

혼자가 좋다는 인식 이면엔 사회적 계약인 결혼을 통해 부여되는 각종 의무와 책임, 양육과 부양 등 무거운 과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인천에서 개인사업을 하며 홀로 사는 배모 씨(36)가 그렇다. 그는 “허례허식 많은 결혼식 문화가 부담된다. 주변에 이혼한 사람을 보면 차라리 혼자인 지금이 속 편하다. 홀로 지내는 지금 생활이 꽤 만족스럽다”고 설명했다.

치솟은 집값에 ‘신혼집’이라는 현실의 벽에 막혀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한 30대 남성도 늘고 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 씨(30)는 2년가량 만난 여자친구와 서울에 전셋집을 구한 뒤 내년 가을 결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적어도 3년은 미루기로 했다. ‘임대차3법’ 등의 영향으로 전세금이 급등하고 올여름 전세대출까지 막혀 전셋집조차 마련하기 힘들어져서다. “마음을 비웠어요. 캠핑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며 자유를 더 즐기려고요.” 실제 30대 미혼 남성의 50.4%는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로 ‘집값 급등’을 꼽았다. ‘혼자가 편해서’라는 응답만큼 많았다.

요즘은 달라진 경제 환경에 맞게 집값을 남녀가 반반 부담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역시 삼미남의 어깨를 무겁게 한다. 미혼남 김모 씨(31)는 “서울보다 집값 부담이 덜한 지방에 사는 친구들이 일찍 결혼하는 편”이라며 “여전히 남자가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압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결혼하면 퇴보한다는 인식이 강해 30대 미혼 남성이 는다”며 “‘준비 안 된’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자녀까지 괴로울 수 있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 “불확실한 시대, 내 몸 투자가 가장 확실한 투자”

삼미남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정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인보다는 나에게, 알 수 없는 미래보다는 오늘에 집중하자고 생각한다. 구독자가 약 20만 명인 유튜버 정모 씨(31)는 고가 수입차를 사서 몰고 다닌다. 유튜브 조회수에 따라 매달 소득이 불안정하고 생활은 빠듯하지만 현재를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정 씨의 행복은 오늘에 달려 있다. “어른들이 말하는 행복을 절대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결혼 후 가정과 밥벌이에 신경 쓰며 행복을 20년 뒤로 미뤄 두기보다는 지금 열심히 일하면서 젊음을 즐기는 게 저의 행복입니다.”

공기업에 다니는 석모 씨(32)는 일주일에 적어도 5회 이상 헬스장에 간다. 석 달 전에는 최근 20, 30대에서 유행하는 ‘보디 프로필’도 찍었다. 그가 몸만들기에 빠진 이유는 이렇다. “집값, 남녀 관계, 결혼, 주식 등 모든 게 불확실한 시대 같아요. 그런데 몸 만드는 건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 무엇보다 확실하잖아요.” 불확실한 관계보다 ‘나’에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삼미남들은 결혼에 비용을 들이는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투자하고 있다. 30대 미혼 남성이 식비, 주거비 등 고정비용 외에 가장 많이 소비하는 분야는 운동·건강관리(42.7%), 의복(39.7%), 여행(31.2%) 등이었다.

20, 30대는 기본적으로 나를 위한 소비에 적극적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올해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보복소비(억눌려 있던 소비 욕구를 한꺼번에 분출하는 방식의 소비)’를 조사한 결과 보복소비 비율은 20대가 46.3%, 30대가 42.2%로 40대(31.4%), 50대(18.0%)보다 훨씬 높았다. 또 미혼(43.6%)이 기혼(28.2%)보다 15.4%포인트 높았다.

자기 관리에 공들이는 삼미남들은 결혼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잘 가꾸고 능력만 있으면 나이가 들어도 괜찮은 여성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혼인 오모 씨(33)는 최근 주식 대박으로 30억 원을 벌고 퇴사했다. 집값 걱정에서 자유롭지만 당분간 결혼 계획은 없다. 오 씨는 “아무나 만나서 결혼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가꾸는 삼미남을 위한 산업도 크고 있다. 업계는 젊은 남성이 명품 소비에 적극적인 점에 주목한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이런 흐름을 반영해 2019년 서울 명품관 웨스트 4층을 명품 남성 전용 매장으로 꾸몄다.

○ ‘오미남’ ‘육미남’을 위한 정책 필요

앞으로 오미남, 육미남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삼미남 가운데 ‘결혼 계획이 없다’고 답한 비중은 45.8%나 됐다. 고령 1인 가구가 늘어날 미래를 대비한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1인 가구는 연말정산 때 인적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등 사실상 ‘싱글세’를 물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부동산 청약이나 조세 및 복지제도에서도 결혼한 부부에 비해 역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30대 미혼 남성은 미혼 생활의 불편한 점으로 ‘외로움’(75.3%)을 가장 많이 꼽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런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8년 내각에 외로움 담당 장관(Loneliness Minister)직을 신설해 화제가 됐다. 일본 정부도 최근 영국의 사례를 참고해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마련했다.

인구 전문가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눈앞의 행복’을 미루려고 하지 않는 미혼자의 필요를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외로움 달래고 집값 아껴”… 동성-이성간 ‘비혼 동거족’ 늘어
車-생활용품 나눠쓰고 가사 분담… 공유주택 수요도 갈수록 늘어
주택청약-대출 등에선 불이익… 정부, 주거-의료 등 지원 검토



비혼 여성인 황선우 씨(44)와 김하나 씨(45)는 5년 전부터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다.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데다 집값을 아끼면서도 더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생활용품을 나눠 쓰고 요리, 청소 등을 분담해 삶의 효율도 높인다. 이들은 2년 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란 책을 통해 ‘비혼 동거’ 경험담을 나누며 비혼자 2, 3명이 같이 사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황 씨는 “노후에는 주변의 비혼, 딩크족(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 친구들과 ‘실버타운’에 모여 살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비혼 동거족’이 늘고 있다. 편하게 동성끼리 모여 사는 이들도 있고 사실상 부부와 다를 바 없지만 결혼이란 틀에서 벗어나 함께 사는 남녀도 있다. 결혼은 싫지만 외로움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집값 급등 속에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벗어나 쾌적하게 살고 싶단 욕구도 작용했다.

22일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13세 이상 남녀 가운데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은 59.7%였다. 이런 생각을 갖는 사람들의 비율은 2012년(45.9%) 이후 해마다 늘고 있다. 비혼자들의 동거는 자연스러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비혼자들은 공유주택이란 대안을 찾기도 한다. 공유주거는 개인 공간은 독립적으로 분리하고 식당, 거실 등을 다른 입주민과 공유하는 형태다. 최근에는 공유 거실에서 요리 수업이, 헬스장에서 요가 수업이 열리는 등 다양한 주거 서비스가 접목돼 진화하는 모습이다. 공유주택 ‘에피소드’는 반려동물 놀이터와 용품을 갖춘 지점을 선보이기도 했다. 에피소드를 운영하는 SK디앤디 관계자는 “미혼인 1인 가구들이 입주를 많이 한다”며 “공용 공간에서 다양한 입주민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비혼 동거족이 오히려 결혼한 부부보다 상대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비혼동거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동거인에게 만족하는 비율은 63.0%로 같은 해 가족실태 조사의 배우자 만족도(57.0%)보다 6%포인트 높았다. 지난해 10, 11월 만 19∼69세 국민 가운데 동거 중이거나 동거 경험이 있는 3007명을 조사한 결과다. 동거의 긍정적인 면으로는 응답자 88.4%가 ‘정서적 유대감과 안정감’을 들었다.

물론 비혼 동거의 단점도 있다. 응답자의 50.5%는 ‘주택 청약, 주거비 대출 등 주거지원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불편함으로 꼽았다. 이어 ‘동거 가족에 대한 부정적 시선’(50.0%), ‘법적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49.2%) 등의 답변이 많았다. 1년 전부터 옛 직장 동료와 동거 중인 비혼 여성 강모 씨(35)는 “내년 초에 수술을 할 예정인데 가까운 곳에 있는 동거인이 간병을 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린 법적으로 가족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동거인은 간병 휴가를 낼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정부도 비혼 동거인의 어려움을 고려해 지원 정책을 검토 중이다. 관련법을 개정해 가족 범위를 동거커플 등으로 넓게 인정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비혼 가족들의 주거 및 의료 권리를 보호하는 방안도 마련할 예정이다.



세종=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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