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없는데 ‘부모 찬스’로 주택 구입…국세청, 97명 세무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9일 14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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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성인이 된 A 씨는 최근 수십억 원대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했다. A 씨는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식당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가의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던 건 재력가인 아버지 덕이었다. 한 회사의 대표이자 고액 자산가였던 A 씨의 아버지는 고가의 주택 자금을 A 씨에게 줬지만 증여세를 내지 않았다. A 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의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도 아버지가 세금 신고 없이 편법 증여한 것으로 세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20대 초반인 B 씨도 개발 예정지에 위치한 수억 원 상당의 빌라를 구입할 때 ‘부모 찬스’를 썼다. B 씨는 고액 연봉자인 아버지로부터 빌라 취득 자금을 편법으로 증여받았지만 막상 주택을 살 때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엔 자신이 번 돈으로 취득 자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가 당국에 덜미를 잡혔다.

국세청은 이처럼 소득이 전혀 없거나 충분하지 않은데도 고가의 주택을 구입한 20대 이하 등 97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에 들어간다고 19일 밝혔다. 주택 취득 자금을 편법 증여받거나 부모가 자녀 명의로 집을 구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51명과 법인자금을 부당하게 유출해 고가 아파트를 사들인 사업자 46명이 대상이다.

당국은 최근 주택 거래 시장에서 20대 이하의 주택 취득 건수가 늘어나자 소득자료 등을 활용해 주택 거래 자금의 출처를 면밀히 검토했다. 특히 20대 거래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크게 늘어난 서울 지역 거래를 집중적으로 살핀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분석 결과 대다수는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있지만 고가 아파트 단지와 빌라 거래에서는 편법 증여 혐의가 포착됐다”고 말했다.

당국에 적발된 이들 중에는 소득이 적은 배우자와 공동으로 재건축 아파트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소득 신고 없이 배우자에게 자금을 편법 증여한 사례도 포함됐다. 당국은 가족으로부터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한 이들이 돈을 제대로 갚는지 여부를 살필 계획이다. 부모가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명의를 자녀로 둔 사례도 점검한다.

이와 함께 일정 금액 이상의 주택을 구입한 20대 이하를 대상으로 자금출처 검증을 대폭 강화할 예정이다. 주택 뿐 아니라 상가와 주식 등 다른 자산들의 거래에 대해서도 편법 증여와 탈세 여부를 지속적으로 검증할 계획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편법 증여가 의심되는 차입금은 빌린 사람이 이를 모두 갚을 때까지 상환 내역을 철저하게 사후 관리하겠다”고 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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