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꼼수 부른 ‘신도시 보상시스템’ 빈틈…“제도 손질 시급”

  • 뉴스1
  • 입력 2021년 3월 11일 1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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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직원이 매입한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토지에 심어진 왕버들나무의 모습. 2021.3.8/뉴스1 © News1
LH직원이 매입한 경기도 시흥시 무지내동 토지에 심어진 왕버들나무의 모습. 2021.3.8/뉴스1 © News1
땅 투기 의혹을 받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대토 보상을 노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신도시 보상 시스템의 ‘빈틈’이 투기에 악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기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 손질이 시급하단 목소리가 크다.

1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번 땅 투기 의혹에서 악용된 보상 시스템은 ‘대토보상제’다. 이는 신도시·택지지구 등 공공택지에서 땅을 수용당하는 토지주들에게 현금 보상 대신 신도시 땅으로 되돌려 주는 제도다. 추후 신도시에 건물을 지으면 개발 이익을 그대로 누릴 수 있어 현금 보상보다 선호가 높다.

수십조에 달하는 현금 보상이 부동산 시장에 재유입될 수 있단 우려도 덜 수 있는 방안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부터 협의양도인택지 공급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신도시 아파트 특별공급 자격을 주는 등 대토보상 활성화 방안을 실시해왔다.

이 중 협의양도인택지는 토지 수용 과정에서 협의에 원활하게 응한 토지주에게 단독주택용지를 감정가 수준으로 우선 공급된다. 현 규정상 1000㎡ 이상 토지 소유자가 대상인데, LH 직원들이 여기에 맞추기 위해 기준에 맞춰 땅을 쪼갰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LH 직원 사례에 대토 보상을 악용한 투기수요를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원주민 토지주의 재산권을 최대한 보장해 원활한 토지 수용이 가능하도록 한 당초 취지는 최대한 살리되, 제도를 이용해 개발 이익을 보려는 외부 투기 세력은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은 “현재는 지구지정 직전까지만 땅을 취득하면 대토 보상을 해줘 투기 유인이 크다”며 “개발 계획 발표 3년 전, 5년 전 등 일정 기간을 정해 그 기간에 땅을 사면 대토 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정은 대토보상이 애초 목적과 달리 투기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외지인에게는 대토 보상을 하지 않거나 보상을 하더라도 그 이익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무원이나 LH 등 공공기관 직원은 대토보상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토보상을 줄이고 토지보상금을 늘리면 풀린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돼 ‘불쏘시개’가 될 수 있어 정부로서는 적정선 찾기에 고심이 깊다. 대토보상제 외에도 개발 정보를 가진 공직자가 이를 사익에 이용하거나 외부에 유출하지 않도록 촘촘한 방지책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투기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만 일부 수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주도 택지개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제까지처럼 비밀리에 사업을 추진하다 불시에 예정지를 발표하기보단, 장기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해 국민에게 미리 알리는 편이 투기 차단에 낫단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비밀리에 개발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가 (내부 구성원들이) 확실한 정보를 갖고 투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며 “선진국처럼 사업 초기, 협상 초기부터 정보를 공개했다면 이렇게까지 투기가 불거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비밀이라는 것은 밀실로 들어갈수록 투기적 가치가 높아진다”며 “차제에 정부는 국토종합계획에 따라 20~30년을 내다보고 장기 계획을 세우고 국민들에게 공개한 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대로 쭉 밀고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장기계획에 따라 개발을 진행하고, 본격적인 검토가 이뤄지는 개발 대상지에 대해서는 중간 지점에서 토지 거래를 규제하거나 중단하는 극단의 대책도 필요하다”며 “계획 수립의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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