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계란값 안정을 위해 ‘미국산 수입 계란’ 60톤을 무관세로 들여와 시장에 풀었다. 하지만 수입란을 구매했다는 소비자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대형마트·편의점·슈퍼마켓·온라인몰·베이커리 등 주요 유통채널들이 수입란을 취급하지 않고 있어서다. 특히 정부는 농협 하나로마트를 통해 수입란을 공급할 계획이지만, 판매처가 수도권으로 한정된 데다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아 소비자가 체감할만한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수입란 60톤 풀었는데”…마트·편의점·슈퍼 “취급 안 해”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부는 지난 27일부로 무관세로 수입한 ‘미국산 신선란’ 60톤 물량(101만개)을 시장에 공급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확산으로 국내 계란 산지 가격이 전년 대비 46% 폭등하자, ‘무관세 수입란’을 대량으로 풀어 시장가격을 조절하겠다는 구상이다. 농림부는 올해 6월까지 총 5만톤의 수입란에 대한 관세를 면제할 예정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수입 계란을 취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홈플러스도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며 소극적인 입장이다.
편의점과 슈퍼마켓의 상황은 마찬가지다.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은 기존대로 국산 계란만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한 편의점 관계자는 “계란 공급량이 줄어 수입란 취급을 검토하긴 했다”면서도 “가격 메리트(이점)나 고객 인식이 아직 확산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신선식품을 새벽배송하는 SSG닷컴과 마켓컬리도 ‘국내산 계란’을 고수하고 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아직 정부에서 세부지침이 내려온 것이 없다”며 “현재로서는 수입란을 취급할 계획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反수입란 정서’에 취급 기피…“수급 심각한 상황 아냐”
정부가 수입란 101만개를 한꺼번에 풀었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수입란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다.
업계는 유통채널이 수입란 취급을 피하는 이유로 ‘반(反) 소비자 정서’를 꼽는다. 국산 계란에 비해 유통과정이 긴 탓에 품질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설명이다. 현재 계란 수급 상황이 2017년 ‘계란 파동’ 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정부가 품질 검사를 철저히 하더라도 소비자 인식은 다소 부정적이다”라며 “해외에서 국내로 유통하는 과정이 길다 보니 신선도나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도 “2017년 계란 파동 때는 대형마트에서 국산 계란으로 한 판짜리 상품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했다”며 “현재 공급량이 일부 줄긴 했지만, 수급에 크게 지장이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무관세’라도 수입란이 국산란보다 월등하게 싼 편도 아니다. 특히 대형마트는 농림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농할(농산물 할인) 갑시다’ 행사를 통해 달걀을 20% 할인하고 있어 가격 인상을 일부 상쇄한 상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관세를 면제하더라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물류비가 상당한 편”이라며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소비자들이 수입란에 매력을 느낄지도 유통사로서는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베이커리도 “입찰 안 했다”…미국산 계란, 어디로 갔나
그 많은 ‘무관세 수입란’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일각에서는 계란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베이커리나 동네슈퍼로 수입란이 유통됐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해당 업계는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형 베이커리 업체들은 이번 수입란 공개경매에 입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체 관계자는 “(수입란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고, 수입 생란을 취급할 계획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업체 관계자 역시 “정부로부터 경매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도 받지 않았다”며 “4년 전 계란 파동 때도 수입 계란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동네슈퍼도 수입란을 취급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양현석 서울경기동부 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계란값이 계속 오르고 있고 수급도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도 “슈퍼마켓 계란 도매상 중에서는 수입란을 입찰해 취급하는 곳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농림부는 우선 수도권 농협 하나로마트 42개 매장을 통해 수입란을 유통하고 있다. 정부가 수입란 가격과 업체별 공급량 등 세부지침을 정하지 않은 만큼, 수입란 판매처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농협을 통해 수입란을 유통하고 있지만, 전체 농산물 시장에서 하나로마트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크지 않아 소비자가 가격 인하 효과를 얼마나 체감할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대형 유통채널도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는 입장”이라며 “정부가 업체별로 할당량을 정하면 일부씩 수입란을 취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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